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완주 (문단 편집) == 생애 == 1946년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에서 태어났다. 전주풍남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산하 기관에서 근무하였다. 관선 [[고창군|고창군수]], 관선 [[남원시|남원시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전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 당시에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전주시장 재직 시절에는 준중형차였던 [[아반떼]]를 관용차로 타고 다니는 검소한 면모와[*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시장, 군수 등 대부분 지자체장들은 관용차로 [[현대 그랜저|그랜저]], [[현대 다이너스티|다이너스티]], [[현대 에쿠스|에쿠스]] 등 준대형급 이상 승용차를 많이 이용했다. 실제로 전주시장 시절 지자체장들이 모이는 행사에 아반떼를 타고 갔다가 일반 차량으로 오해한 주차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는데 김완주 시장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당황했다는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한옥마을 조성 등의 업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06년 3월 10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라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8년간 역임하던 시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라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2005년)|민주당]] [[정균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감으로 열린우리당이 해당 선거에서 역대급 참패를 찍는 와중에도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중 '''유일한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이후 전남권 지역정당으로 쪼그라들어 오늘내일하던 [[민주당(2005년)|민주당]]보다도 못한 대참패를 당했다. 그나마 광역단체장 중 전북지사 1곳만 건진 것도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정동영]]의 정치적 기반이 전북이었던 데다 선거기간이 조금만 길었다면 전북지사마저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3선 도전을 포기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8년간 역임해온 [[전라북도지사]] 임기를 마무리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나 다름없던 전주시 지역구 공천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이후 칠순이 넘은 고령의 나이다 보니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었다. --이름과 달리 완주군수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