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환(1963) (문단 편집) === 밀입북 === 1988년 [[형집행정지]]로 출소된 이후 이듬해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반청)'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같은 해에 남파간첩 윤택림과 만나 [[조선로동당]]에 현지입당했고,[* 북한에 가서 정식 입당할 수 없으니 한국 현지에서 입당하는 것. 북한은 남파간첩들에게 현지입당시킬 권한을 주어 한국 내 주사파들을 포섭했다.] 2년 뒤에는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하여 평양에서 정식 입당식까지 치러 '관악산 1호'라는 대호(암호명)를 받았다. 5월 19일 조유식[* 인터넷 서점으로 유명한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의 설립자다.]과 함께 2차 밀입북 후 [[김일성]]을 만나고 17일 후 공작금 20만 달러를 받아서 돌아왔다. 이 공작금으로 1992년 3월에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하영옥, 박준X[* 체포 후 바로 전향하여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기에 아직도 신원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와 함께 [[민주민족혁명당 사건|민족민주혁명당]](약칭 '''민혁당''')이란 지하당을 조직하고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민혁당 그룹은 당시 학생운동 특히 [[한총련]]의 주류는 아니었다. 민혁당의 영향력 아래 있던 그룹은 경기남부 지역과 전북 지역에서 '사람사랑' 계열로 활동했는데 이들은 한 번도 한총련 주류가 아니었다.] 당시 김영환, 하영옥, 박준X 3인이 중앙위원으로 조직의 핵심지도부였으며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장으로 서열 5위 정도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