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식(군인) (문단 편집) === 군 경력 === * 위관 장교 * 제9보병사단 수색대대에서 (백마부대)에서 소대장을 시작으로, 동부전선 제22보병사단에서 중대장직을 수행했다.[* 1986년 중대장 수행시 재구상을 수상] * 대위 시절 육군 국외 군사교육과정에 지원 후 선발되어 독일 고등군사과정(OAC)에서 1년 반 동안 수학했다. * 영관 장교 * 소령 시절 약 1년 반을 독일 지휘참모대학에서 공부하여 독일군 전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실력이 준수하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비서실장직 및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책연수(대령) 경험 등 한미연합작전 수행에 적합한 능력과 경험을 갖췄다는 평이다. * 제1보병사단에서 대대장, 제12보병사단에서 연대장을 마쳤다. 지휘관 직 외에도 소령에서부터 대령까지 전후방 각지에서 교관 및 참모장교로 복무했다. * 2007년 합동참모본부 해외파병과정 시절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샘물교회 봉사단체원들이 인질 석방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416998|#]][[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04667|#]] 한편, 인질 석방을 성사시킨 공로로 2008년에 보국훈장 수훈 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이를 마다하고 대신 후배 군인인 문영기 당시 중령을 추천했다. 인질 석방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현지로 급파되었던 군사 협조단원들에게 공을 돌린 것이다. 결국 보국훈장은 군사 협조단 작전총괄장교였던 문영기 중령('15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 '16년 국무총리실 산하 초대 대테러센터장)에게 전수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977298|#]] * 장성급 장교 * 2010년 6월 제37대 15보병사단장으로 취임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강군 육성"을 부대 지휘의 모토로 내세웠으며, 특히, 2010년 10월 29일 오후 5시 26분에 발생한 아군 GP에 대한 적 GP의 총격도발 당시 단 45초 만에 대응사격을 완료하는 완전작전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적이 아 GP를 향해 14.5mm 기관총 2발로 도발하자, 아 GP에서는 즉시 피탄 지점 확인 후 지휘계통을 통해 정확한 상황을 보고했다. 동시에 소초장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결심하에 적 GP를 향해 K-6 기관총으로 총 3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또한 북한 GP를 향해 북측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에 따른 정당한 대응사격임을 알리는 경고방송을 2차례 실시하는 등 적 도발에 대해 신속하고 완벽한 대응조치를 취했다. 상황 파악~대응 사격까지 모든 조치가 단 45초 만에 완료된 이 작전은 이후 '45초 완전작전'이라 불리우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17878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234830|#]] 한편, 2010년 당시는 동년 3월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11월에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G20 정상회담, 그리고 우리의 대북 심리전 장비에 대한 북한의 공개적인 타격 위협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이러한 안보환경 속에서 북의 도발에 신속하고 완벽하게 대응한 15사단 장병들은 당시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편, 재임기간 중 2011년에는 국군의 날을 맞아 '군 전투력 강화 유공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했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33391|#]] 15사단은 2002년 8번째 수상 후 10년 만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또한 아내와 함께 직접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해 부대가 위치한 화천군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는 등 지역주민과의 끈끈한 유대관계 구축 노력에 호평을 받았다.[[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80430|#]] * 2012년에 제2대 [[합동군사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다. 재임 기간 합동성 강화를 위해 창설된 합동군사대학교가 명실 공히 최고 군사교육 기관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입지를 다지고, 학교의 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군 내 흩어져 있던 각종 외국어과정을 통합하여 [[국방어학원]]을 창설함으로써 군 외국어 전문인력 양성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다. 2013년에는 학교 평가체계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개선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30103&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138|#]] 상대평가 제도에 따른 학생장교들의 성적 지상주의, 암기 위주 학습 및 창의성과 분석적 사고능력 결여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참전 경험이 없는 국군 장병들을 위해 전장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전쟁사 교육을 강조했다. 학생장교 및 교직원들의 전쟁사 학습을 돕기 위해 전쟁사 일력(日曆)을 발간하기도 했다. * 2013년 4월 [[제5군단|5군단장]]으로 취임했다. 육군의 표준 군단으로 일컽는 5군단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승진훈련장을 첨단 과학화 훈련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사업에 일조했다.[* 승진과학화 훈련장 구축사업은 육군의 교육혁신과 전투력 향상의 많은 기대를 모은 사격장으로,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어 육군 기계화부대와 보병부대의 실 전투사격 공방훈련이 가능해졌으며, 국군 역사상 최초로 기동화력의 시가전 훈련이 가능한 도시형 전투사격장이 마련되었다.] * 2014년 10월에 제18대 [[육군항공작전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재임기간 동안 합동참모본부와의 전술토의, 미국 교범 연구 및 자체 운용개념 발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형 공격헬기 아파치 가디언(AH-64E)의 운용개념을 정립했다. 이후 2016년부터 육군에 도입된 아파치 가디언은 기 정립된 운용개념이 적용되어 신속한 전력화가 가능했고, 초기 전력화 단계에서의 시행착오 최소화 및 효율적인 작전운용이 가능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의무후송항공대]] '메디온 부대'를 창설해 육군 응급후송체계의 혁신을 추구했다. 이후 메디온 부대는 2015년 8월에 발생한 북한의 [[DMZ 목함 지뢰 도발 사건]] 당시 [[제1보병사단|1사단]] 수색대대 부상 장병들(당시 김정원 하사, 하재헌 하사)을 신속히 후송하여 생명을 구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600008|#]] * 2015년 9월 제40대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취임하여, "전투준비를 최고의 존재가치로 여기고 오직 전방만을 바라보면서 언제, 어디서 적이 도발하더라도 현장에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16/0200000000AKR20150916115500062.HTML?input=1195m|#]]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실시하여 지역 언론 및 지자체, 관련 단체 등으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2017년 5월 초 발생한 강릉 동해 삼척 대형 산불 당시 연인원 8천 여 명에 달하는 장병을 신속히 산불 진화작전에 투입하는 등 국민을 위한 군대라는 기본 임무에도 충실하다는 호평을 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52302|#]] 사령관 재임 시절 "적과 싸워 이기는 정예 제1야전군 육성"이라는 방침으로 지휘하였다. * 2017년 8월 10일에 [[박종진(군인)|박종진]] 대장(전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에게 제1야전군사령관직을 인계하고 육사 생도시절을 포함하여 총 41년 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전역 당시 '''본인의 휘하에 있던 3개 군단장들[* 2군단장 [[김운용(군인)|김운용]] 前 [[제3야전군사령관]](육사 40기), 3군단장 [[김병주]]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육사 40기), 8군단장 [[박한기]] 前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학군 21기). 이들 중 [[김운용(군인)|김운용]] 2군단장은 [[제5군단장]] 시절에도 직속부하([[제3보병사단]]장)였다.]도 이후 모두 대장으로 진급했다.''' * '''위관''' * [[제9보병사단]] 수색대대 소대장 * [[제22보병사단]] 중대장직 * '''소령''' * [[육군대학]] 전술학처 방어교관 * [[제1보병사단]] 부대훈련장교 * '''중령''' * [[제1사단]] 11연대 1대대장 * [[제72보병사단]] 작전참모 *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 부대구조 기획장교 / 전략기획 총괄장교 * [[수도방위사령부]] 교육훈련참모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보좌관 * '''대령''' * [[제12보병사단]] 51연대장[* 12사단 GOP 연대장 시절 겨울에 폭설이 내려 전방 GOP 대대를 연결하는 전술도로가 끊길 위험에 처했고, 설상가상으로 야간이어서 제설작전도 힘든 상황 속에서 직접 제설차량을 선탑하여 제설작전을 진두지휘했다.] * [[제3군단]] 작전참모 *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 해외파병과장 * '''준장''' {{{-2 2007년 10월 2차 진급}}} * [[제3군단]] 참모장 *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 '''소장''' {{{-2 2010년 6월 2차 진급}}} * [[제15보병사단]]장 {{{-2 (2010.6 ~ 2012.5)}}}[* 재임시절 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장관, 대통령 부대표창을 모두 수상해 '부대표창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SNS를 통해 병사 부모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장병 부모들로 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장병 부모들을 부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사단장이 직접 이등병의 발을 닦아 주어 부모들을 감동하게 한 일화가 유명하며, 사단장 이임 후 합동군사대학교장 취임식 다과회에서 15사단 장병 부모들이 직접 감사패를 전달했다.] * [[합동군사대학교]] 총장 {{{-2 (2012.5 ~ 2013.4)}}} * '''중장''' {{{-2 2013년 4월 2차 진급}}} * [[제5군단장]] {{{-2 (2013.4 ~ 2014.10)}}} * [[육군항공작전사령관]] {{{-2 (2014. 10 ~ 2015.9)}}} * '''대장''' {{{-2 2015년 9월 1차 진급}}} * [[제1야전군사령관]] {{{-2 (2015.9 ~ 2017.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