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삼 (문단 편집) ===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 ===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는 [[자유]]의 유보가 아니라 자유의 신장이며 [[인권]]의 탄압이 아니라 인권의 보장이고 [[언론]]의 통제가 아니라 자유언론의 창달이며 [[민주주의|민주체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1514970|#]] 김영삼의 정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독재]]에 대한 평생의 분노다. 그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 세력에 편입된 이후에도 군부독재 세력을 혐오해 그를 따르던 [[민주계]]를 이끌고 초기 [[신한국당]]에서 군부 기반의 [[민정계]]들을 견제하고, 이후 [[하나회]]와 두 전직 대통령까지 [[숙청]]해 한국 보수 세력의 DNA 자체를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점은 이후 독재자들을 용서하고 정적들도 포용한 김대중과 오히려 비교되는 지점이다. 실제 90년대 김대중이 구 독재 세력을 품으려 하자, 이들을 미화한다며 시국선언까지 낭독했을 정도였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정도로 독재자를 싫어하고 평생 립서비스조차 안한 대통령이 현 보수정당의 시초라는게 어찌보면 현대사의 아이러니.] 경제면에 있어서도 군사정권과의 결별을 시행했다. 대통령 취임 후 과거 박정희 정권부터 이어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종식하고[* 물론 엄밀히 따지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미 장면 내각 시절부터 준비하던 것이긴 했다.], 관 주도 경제정책을 이끈 '경제기획원'을 해체했다. 그 대신 진짜 경제적 자유주의에 좀 더 근접한 규제완화, 경제정의 실현 등을 골자로 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3546767?sid=100|#]] 김영삼은 냉전 시절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체제라고 비판적으로 보아, 자유가 없는 세계가 잘못하면 공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운동권 출신들을 영입하는 등[* [[이재오]]가 대표적이다.] 인재 확보를 겸한 포용 행보를 보이면서도 극단적인 운동권과는 선을 그었는데, 예를 들어 극좌 성향 대학생 단체인 [[한총련]]에 대해 임기 당시 통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