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삼 (문단 편집) == 어록 == [[YS]]는 특유의 거침없는 성격과 직설적 화법으로 유명했다. 거물 정치인 치고 YS에게 비판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언론 등에서 언급된 주요 어록을 정리. 위의 일생 파트에서 언급이 된 어록들도 존재한다. > '''어제 한잠도 자지 못하고 여러가지 정신적으로 피로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연설을 들어보면 '끊어지는 한'으로 들린다.] 바른 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하는 일이면 싸우렵니다.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싸우렵니다.''' >---- >1969년 6월 23일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초산테러]] 당시 국회연설 中 >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원본을 들어보면 '''비틀지라도''' 가 '''베틀지라도'''로 들린다. 김영삼 특유의 발음.] >---- >1979년 10월 4일, 국회의원 제명 직후 >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 >1983년 5월 29일, 광주 민주화 운동 3주기 단식농성 후 > '''날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이런 식으로 힘으로 막을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은, 마음은 전두환이가 뺏지를 못해!''' [[https://m.tv.naver.com/v/622208|영상]] >---- >1985년 2월 8일 상도동 자택 앞에서[* 이 날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이후 미국의 구명으로 망명 중이던 김대중이 귀국하는 날이었고, 김영삼은 [[김포공항]]으로 김대중을 마중 나가려 했으나 이미 경찰 병력이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경찰들에게 일갈하던 중 나온 명언이다.] > '''헵상은 겔렐되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 했던 말. 김영삼이 어떤 인물인가를 단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 말이다.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전두환과 회담을 가지며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문을 박차고 나오며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저런 말을 했다고. 이에 대해선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에 나와 있다. >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 '''아주 악재만 아니면, 정치인이 언론에 다양하게 노출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 >야당 총재 시절, 여권에서 일부 언론을 통해 공격을 시도하자 했던 말.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자들과 자주 모임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화통하게 경청, 이들 대부분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한다. 훗날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https://m.youtube.com/watch?v=iJozt3picgM&list=PLDygVk8g8KX37T-Sy-o5-FRLFcG6x8sYo&index=7&t=95s|"YS를 대통령으로 만든건 언론"]](16:24초부터)이라 평했을만큼 YS의 친화력이 십분 발휘된 것. > '''[[하나회|호랑이]]를 잡으려면 [[민주정의당|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 >[[3당 합당]] 후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中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 >----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中 >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 >1993년 첫 국무회의 中, 이후 공직자 재산공개 시행 > '''[[하나회|개]]가 짖어도 [[문민통제|기차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달릴 수밖에 없다.]]'''[* 본래는 [[투르크]]의 속담을 일부 변형한 것이다. [[https://en.wiktionary.org/wiki/the_dogs_bark,_but_the_caravan_goes_on|#]]] >---- >[[하나회]] 척결 당시 하나회의 반발에 일침을 놓으며 >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가 없습니다.''' >---- >[[금융실명제]] 긴급 명령 담화문 中 > '''그래서 이번에 그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놔야겠다.''' >---- >1995년 한중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을 언급하며 [[https://youtu.be/fGB_lg2c3WI?t=1m45s|영상]] 이에 [[일본]]에서는 '버르장머리'라는 한국어 단어 자체가 해석이 안 돼서 당황했었다는 후문이 있다. >'''부익부 빈익빈, 정경유착의 왜곡된 경제구조와 오늘의 경제위기도 박정희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 >[[https://ncache.ilbe.com/files/attach/new/20151122/377678/2050968232/6979003149/0a1ba7941b2f8f19a7bcc6ee470cd1ae.jpg|1999년 5월 퇴임 후 첫 성명서에서]] > '''나도 전에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초산테러]] 등 테러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 이번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 >---- >2006년 [[박근혜]]가 커터칼 테러를 당하자 문병을 간 자리에서[* 당사자나 어법이나, 김영삼 본인이 박근혜를 보는 시선을 생각해보면 이건 위로가 아니라 면전에서 대놓고 놀리는 수준이다.] > '''정치도, 대통령도 그 모두가 [[인간]]이 되고 난 뒤의 일입니다. 먼저 인간이 돼야 합니다.''' >---- >2007년 발언. 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79875&plink=ORI&cooper=NAVER|2015.11.22. 사망일 SBS 뉴스]] > '''만약 내가 [[하나회]]를 깨끗이 청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 >2008년 [[우석대학교]] 초청 강연 中[* 실제 김영삼이 신한국을 열겠다는 본인 말마따나 노빠꾸 개혁과 군부 숙청을 단행하며 초석을 다져놨기에, 이후 김대중, 노무현이 그 위에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 > '''김대중 대통령하고 나하고 관계는 6대 국회부터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고, 오랜 동지적인 관계로 있었지만, 경쟁 관계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입니다. (기자들이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냐고 묻자) 아 그렇게 봐도 좋죠. 이제 그럴 때가 된 것도 아닙니까?''' >---- >2009년 8월 10일, 병상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병하며[* 다만 안타깝게도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것이 두 사람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참고로 YS가 DJ와 결별 이후 사이가 나쁠 땐 모진 말도 제법 했고 그런 말들도 어록이라면 어록이지만, 사실 이런 마지막 순간을 놓고 보면 진의가 왜곡될 소지가 있기에 다른 정치인에 대한 어록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전두화이]]는 와 불렀노? 대통령도 아이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몬 간다.''' >----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참고로 이어진 오찬에서 [[전두환]]이 [[와인]]을 찾자, "니는 청와대에 술 처무러 왔나?"라면서 다시 한 번 면박을 주었고, 이에 화가 난 전두환은 일찍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말이 좋아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한 자리였지만, 2010년 당시 생존해 있던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세 명 뿐이었고, 노태우는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므로 결국 초청이 가능한 전직 대통령은 앙숙인 전두환, 김영삼 둘 뿐이었다. 그러니 저런 사단이 안날 턱이.. 당시 청와대에서는 화기애애했다는 식의 브리핑을 내놨지만[[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54&aid=0000001674|#]]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고 실제로는 저런 사단이 났었다. 김영삼 특유의 깡따구와 함께, 재임 중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전두환을 단죄하였으며 퇴임 이후에도 결코 [[5.18 민주화 운동|학살]]과 [[12.12 군사반란|군사 반란]]의 [[전두환|수괴]]를 용서할 수 없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 >'''[[박근혜|그건]] 사자도 아니다. [[칠푼이]]다.''' >---- >2012년 상도동 자택을 예방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