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김영삼 (문단 편집) === 인재 발굴 === 1968년에는 정치학을 지망하던 [[서석재]]를 발탁하여 자신의 비서로 채용하여 정계에 입문시켰고 1970년에는 서울대학교 운동권 출신 [[김덕룡]]을 발굴하여 정계에 데뷔시켰다. 1971년 유신 선포 이후에는 [[김동영(정치인)|김동영]], [[최형우(정치인)|최형우]]도 측근으로 발탁하였다. 이들은 김영삼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김동영과 최형우의 활동은 두드러져 '좌동영 우형우'라는 별칭이 생겼다. 그의 휘하에는 수많은 반군정, 반독재 성향의 정치 지망생들이 모였다. 1988년에는 인권 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지던 [[노무현]]을 발탁하여 정계에 입문시켰고, [[안희정]] 또한 김영삼 측의 통일민주당 보좌관으로 근무했었다. [[문재인]]도 김영삼에 의해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노무현과 안희정은 김영삼과 갈라섰다. 1992년 [[이명박]]을 민자당으로 픽업해온 것도 김영삼 본인이었고, 1993년에 권좌를 차지한 뒤부터는 [[이재오]], [[손학규]], [[이회창]], [[심재철]], [[박형준]], [[김문수]] 등 여러 사람을 민자당 및 신한국당에 넣었다. [[홍준표]], [[이인제]], [[홍사덕]] 등도 그가 픽업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을 주축으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개혁 공천으로 평가 받는 95년 공천을 통해 사실상 보수 내부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었고, 한국의 보수주의 사상이 단순히 반공 안보만을 울부짖던 수준에서 벗어나 시장주의, 자유주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안티테제적 이념을 주입시켰다. 즉, 과장 좀 섞어 민주당으로 넘어간 인재들까지 포함해보면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냥 본인이 발탁한 인재들이 민주당계, 보수정당계 가릴 것 없이 정계를 좌지우지하다시피 했고, 2010년대에도 YS키즈들의 영향력이 계파 수준에서 상당히 남아있다 2020년대 들어서야 겨우 퇴장하는 모양새니 어찌보면 본인 정계 은퇴 후에도 거의 한국 정치사 30여년을 설계해놓고 간 셈이다.[* 물론 더 정확하게 따지면 민주당계는 [[친노]] 이후 친문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YS계 수준을 뛰어넘은 독자적인 세력이 된 상태고, 보수정당 쪽도 [[친이]] 세력이 쇠락한 이후부턴 계보도적으로 확실히 이어지는 구심점은 없는 상태지만 이념적으로는 온건~개혁 보수쪽에 걸쳐있긴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