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근(축구) (문단 편집) === 클럽 경력 === [[파일:6880434_1.jpg |width=500]] [[경희대학교]] 97학번이고, 4학년에 주장을 맡아 2000 험멜코리아배 전국춘계남녀대학축구연맹전에서 경희대의 10년 만에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대학리그에서 제 2의 [[홍명보]]로 불리던 유망주였다. 경희대 졸업 후 [[K리그/드래프트/2001년|2001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을 떠난 [[서동원(1975)|서동원]]의 공백을 잘 메웠다. 2001년 부임한 [[이태호(축구)|이태호]] 감독 아래 리빌딩을 시도하던 대전 수비의 미래로 꼽혔고, 신인 시절부터 32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는 등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첫 '''FA컵 우승'''에 공헌하였으며, 이후에도 대전에서 뛰어난 헤딩과 대인방어 능력을 바탕으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감초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상대보다 머리가 밑에 있던 적이 거의 드물었다는 말이 있을만큼 공중볼 지배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2003년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최윤겸]] 감독 아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수비의 최일선에서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하며 [[강정훈]]과 함께 왕성한 활동량으로 대전의 에이스 [[이관우]]나 [[신진원]]의 수비부담을 줄여주며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는데 기여했다. 그렇게 김영근-강정훈-이관우 트리오가 버티던 2003년 대전 중원은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6위를 이끌며 김영근은 구단이 가장 빛나던 시기에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부상에 시달리며 2년 간 29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대전에서 5시즌 동안 리그 110경기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결국 2006시즌을 앞두고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해 군복무를 해결했다. 2007 시즌까지 광주에서 리그 52경기에 나서며 1골을 넣는 등 주전으로 활약했다. 전역 후 당시 대전의 감독이었던 [[김호]]가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나서면서 재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었으며, 결국 2008 시즌을 앞두고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경남에서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단 1경기만을 출전하고 1시즌 만에 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