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승옥 (문단 편집) === 대학 입학과 시사 만화가 시절 === 1960년 [[서울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했다. 그와 같은 해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던 동기들, 즉 서울대 60학번은 한국 문학에 한획을 그은 학번인데, 불문과 김승옥, [[김현(문학가)|김현]], 김치수, [[하길종]], 독문과 [[이청준]], [[염무웅]], 김주연, [[김광규(시인)|김광규]], 영문과 박태순, 정규웅 등이 포함되어 있다. [[http://daesan.or.kr/webzine_read.html?uid=877&ho=37|관련 글]] 한 학번 위에는 미학과의 [[김지하]]가 있었고, 한 학번 뒤에는 불문과 [[김화영]], 국문과 [[오세영]] 등이 있다. 심지어 당시 문학과목 교양수업은 불, 독, 영문과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당시 강사는 [[김동리]]와의 논쟁으로 문학평론의 새 시대를 연 27세의 [[이어령]]이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4.19]]를 겪었다. 숱한 또래 문인들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4월 19일과 25일의 결정적인 시위에 모두 참여하였다. 참고로 당시는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 그냥 총을 막 쏘던 시절이었다. 글솜씨만 좋았던 게 아니라 그림실력도 뛰어났던 그는 친하게 지내던 독문과 김주연의 소개로 격주로 간행되는 서울대 문리대 신문 <새세대>에 '학원만평'이라는 만화를 그려주다가[* 실제로 그는 나중에 동인지 <산문시대>에 문우들의 캐리커처를 그렸으며, 여러 단행본 표지 그림과 장정을 맡았고, 자신의 연재소설에 직접 삽화를 그리기까지 했다.] 기자로 활동하며 동시대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고학생이어서 하숙비가 밀리면 <세세대> 편집실에서 잠을 청하는 일이 빈번했고,[* <파고다 영감> 연재를 그만둔 후에는 아예 편집실에 살림을 차리고 눌러 앉았다고 한다.] 단벌 코트를 사시사철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동기들은 비슷한 꼬락서니를 하고 다녔던 김승옥, [[김지하]], [[하길종]], [[주섭일]] 등을 '문리대 거지떼들'이라고 불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서울경제신문]]에 <파고다 영감>이라는 4컷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한국일보]]에서 [[서울경제|새 경제신문을 창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샘플 몇장을 그려 무작정 문화부장 앞으로 보냈는데 연재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생각보다 적은 고료였지만 대학생 한명이 하숙비를 내고 등록금을 내기는 충분한 액수였다고. 그의 시사만화는 1961년 2월 14일까지 모두 134회에 걸쳐 신문에 실렸다. 만화 작가로서 본명 대신 ‘김이구’라는 필명을 썼다. 순천 고향 집 번지수에서 가져 온 이름이었다. 만화를 연재하던 시절 동아일보에서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던 [[김성환(만화가)|김성환]] 화백과 연배를 뛰어넘어 친한 친구가 된다. [[5.16 쿠데타]] 이후 언론의 자유가 사라지자, 만화연재를 중단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