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순남 (문단 편집) == 논란 == 한편 친일 청산 움직임이나 좌파 음악인의 재평가에 대해 회의적인 소위 '우파' 계열 음악인들은 은근히 김순남을 깎아내리고 있는데, 특히 '조선음악협회' 회원이었다는 점이 만년 떡밥이다. 친일 음악인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해당 협회가 관제 단체였음을 강조했기 때문에 '결국 김순남도 친일 행위를 한거 아니냐'는 주장인데,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병림픽]]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노동은도 이것은 인정하고 있고, 직접 조사해 정리한 조선음악협회 회원 목록에도 김순남을 올려놓고 있다. 물론 그런 우파 음악인들이 친일 행적이 노골적인 이른바 우파적인 음악인들을 옹호하던 터라 지들도 이념에 따라 친일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런 짓이 친북적이라고 하면서 친일 행적 우파 음악인들을 옹호하더니만 지들이 스스로 친북적인 발언을 하는 논리가 되는 셈. 다만 다른 협회원들과 달리 친일가요를 작곡하는 등 창작 행위에 있어서 적극적인 친일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나, 동시에 반일 활동에도 참가했던 모습을 들어 상대적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2009년에 발간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친일인명사전]]에서도, '적극적 친일 행위자'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는지 등재시키지 않고 있다. 월북 후 작곡된 전시가요들 중 [[김일성|혹부리]] 찬양가가 있다는 것도 가끔 까이는 문제. 하지만 자신을 받아줄 줄 알았던 북한에서조차 숙청를 당했다는 점에서, 남과 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