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 (문단 편집) === 야구의 본격적인 시작, 재일동포 학생야구단과 대학 시절 === 고교 졸업반 시절인 1959년, 김성근은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포함되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은 재일 대한야구협회에서 기획하였는데, 이 당시 재일 대한야구협회가 오사카에 있었기 때문에 오사카, 교토 지역 출신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가쓰라고교는 사실 별볼일 없는 팀이었지만, 김성근은 3학년 때 예선에서 나름 빼어난 활약을 하면서 여기에 포함될 수 있었다.[* 기존 서술에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이 야구 비명문고 학생들로 구성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정확히는 조금이라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 출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제외한 것이고, 명문고여도 고시엔 출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차출되었다. 그런 이유로 차출되었던 대표적인 인물이 오사카 나니와 상고의 4번타자였으나 나니와 상고 폭력 사태 가담 누명을 쓰고 고시엔 출전이 좌절되었던 [[장훈(야구선수)|장훈]].] 이렇게 김성근은 1959년 제4회 재일동포학생야구단에 포함되어 처음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 상황이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김성근 가족의 상황 때문이었다. 김성근이 고3이었던 1959년, 김성근의 홀어머니는 북한의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지원했고 김성근 가족은 곧 북한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만민이 평등하며 모두가 '이팝(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을만큼 부유한 나라가 됐다"는 북한의 선전에 혹해서 김성근 가족도 북한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던 것. 북한으로 가기 위한 모든 서류절차를 마쳤고 만경봉호를 탈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김성근은 재일동포야구단으로 한국에 갔다왔던 것. 한국에 갔다온 김성근은 남한에서는 자신이 야구로 충분히 먹고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김성근은 어머니를 간절히 설득했다. "듣던 것과는 다릅니다. 한국이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한국은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는 야구가 없다는 점이 그가 절박하게 가족들을 설득하는 계기가 되었을 터. 결국 그의 설득으로 가족은 북한행을 포기하게 됐다. 북한이 지금 어떤 나라인지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가족을 살린 선택이 된 셈. 이듬해인 1960년 부산 [[동아대학교]]에 입학했다. 김성근은 1960년 5월에도 재일동포 야구팀에 참여했는데, 이때는 동아대 재학 중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성근은 동아대에서 일학년 과정도 다 마치지 못하고, 입학한 그해 가을 일본으로 돌아갔다. 동아대 재학 당시 언어불통 등으로 한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 용병도 아니고 대학을 다니며 한국어를 배우지도 않았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이나 미국과는 달리 운동만 시키는 한국의 운동부 환경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실업과 대학리그가 사실상 프로리그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서 더 심하지만 사실 이전에도 한국어 발음은 부정확했다.NHK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을 때 일본어를 더 유창하게 쓰기도 했다.] 동아대에서 지낸 반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언어가 잘 통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19세의 청춘 김성근은 나름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동아대에 다닐 때 같은 학과에 김성근 본인을 좋아하는 여학생이 4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음식점, 제과점, 건축가 등 부유한 집안의 딸들이었다고. 안타깝게도 집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딸내미가 없었다나. 하지만 야구를 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까워. 그중에서 제과점 딸은 부산 하숙집에까지 찾아오곤 했었거든. 그런데 사실 그때는 다른 여자한테 눈이 팔렸었어. 6명의 친구들이 하숙집에서 함께 기거했는데 옆집에 아주 잘생긴 '식모'(살림 도우미)와 어떻게 하면 데이트 한번 해볼까가 관심의 대상이었지. 6명이 본의 아니게 라이벌 관계를 이룬 셈이야." 그 중에서 친구 한 명이 그 여자와 용두산 공원으로 데이트를 갔다왔다는 소리를 듣고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속 쓰려 했다고. [[http://ilyo.co.kr/?ac=print&entry_id=1586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