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선동(1967) (문단 편집) === [[제19대 대통령 선거]] === 2017년 2월 2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3월 25일 민중당 후보로 확정됐다. 여담으로 후보 선출 당시 득표율이 무려 95%[* 투표율은 72%.]였는데, 사실은 단독 출마 상태로 찬반 투표를 하였던 것. 대선 후보 직업란에는 '''플랜트건설노동자'''로 되어 있다. 최루탄을 던지고 의원직을 잃은 후 생계를 위하여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선후보들 중 선관위에 신고한 기준으로 재산이 가장 적은 후보(1,814만 7,000원)이다. 공약으로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사드배치]] 즉각 철회, 전시작전권 환수, [[개성공단]] 즉각 재가동, 남북 평화협력 정책, 비동맹 중립국 정책 [[이석기|양심수]] 석방,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1만원 즉각 실현, 선거연령 18세 이상으로 인하, 국•공립대 등록금 상한제,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내걸고 있으며, 대선후보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근 [[경상북도]] [[성주군]] 소성리 사드반대 투쟁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표 결과 득표율 0.08%, 27,229표를 득표해 무소속 [[김민찬]] 후보에게 조차 밀리며 8위를 기록하고 낙선했다. 한 때 진보진영의 주도권을 다투는 라이벌로 여겨지던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득표율 6%를 넘기며 선전한 것과 대비되는 초라한 성적. 사실상 [[민중연합당]]의 당원들을 제외하면 지지받지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지층[* 작년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에 투표한 14만여명]조차 [[사표론|사표 심리]] 등으로 [[문재인]] 등 다른 후보들로 이동한 결과로 보인다. 현수막 수에서 주요정당에 밀리지 않는 등 상당한 조직력을 보였음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신생정당의 한계와 진보진영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얻지 못한 것과 선거 전략 실패로 볼 수 있는데, 진보 지지자 사이에서도 [[민중연합당]]에 대해 종북 이미지가 상당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해명에 소홀했으니 "이제는 세상을 바꾸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표되는 촛불시위에 편승하는 뻔한 전략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차별성이 없는 상황에서 종북이미지마저 청산되지 못했으니 애초부터 득표가 어려웠던 셈. 참고로 "이제는 세상을 바꾸자", "민중후보"라는 구호가 13,14대 대선에 출마했던 무소속 [[백기완]] 후보의 구호[* 세상을 바꿉시다, 민중후보.]와 비슷하다. 실제로 백기완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적극 반대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