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부식 (문단 편집) === 본관? ===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여 낙랑왕이 된 것처럼 김부식의 작위가 낙랑군 개국후였던 것을 볼 때 김부식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경순왕과 같은 [[경주 김씨]]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고려사]]와 위키백과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김부식의 본관에 대한 의문은 김부식의 선조와 후손의 행적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면서 족보상 선후 관계를 고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왔다. 김부식의 혈통은 위로 조상 2대, 아래로 후손 2대씩까지만을 정확히 상고할 수 있고, 김부식의 후손을 자칭하는 가문도 없어서 어느 집안 족보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김부식이 혈통적으로 신라 왕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경주 김씨라고 보기도 한다. 김부식의 증조부인 [[김위영]]은 [[신라]]가 멸망하고 금성을 경주로 개편할 때, [[경순왕]]을 따라 여러 귀족들이 개경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경주에 남은 집단의 유력자로서 [[고려 태조]]가 경주의 주장으로 임명한 이래 일가가 경주에서 살았는데, 이 김위영이라는 사람의 출신을 알 수 없다. 경주 출신이니 신라계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반드시 신라 국왕 계열의 가문은 아닐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가야 [[김유신]]계인 [[김해 김씨]]가 있다. 또한 신라 왕 계열이라 할지라도 [[경주 김씨]]만 있는것이 아니다. 경주 김씨 말고도 [[강릉 김씨]], 부안 김씨, 통천 김씨 등이 있다.[* 신라 김씨 왕족 계열의 가문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신라 김알지 후손들의 연합체인 ‘신라김씨연합대종원’도 있는 형편이다.] 김부식의 손자인 김군수가 동도객관이라는 시를 지어 거기서 자신을 [[태종 무열왕]]의 후손이라 칭하는데, [[강릉 김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주 김씨는 내물왕계로, 무열왕의 부계 후손은 아니다. 신형식 교수가 쓴 <신라통사>라는 책에는 고려 개국 당시에도 무열왕계는 강릉으로 물러나 세력이 위축된 상태였기에 경주와 관련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신라 하대의 중시조인 [[원성왕]] 김경신이 외가 쪽으로 무열왕의 후손이므로 경주에서도 무열왕의 혈통 자체는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 부계 조상을 중시한 것과는 달리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상속 문화는 부모 양계 혈통에 대한 권리를 복합적으로 물려받았으므로, 모계로 무열왕의 후손이므로 그런 언급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삼국사기]] 기준으로 박씨의 부계 혈통은 [[아달라 이사금]] 대에서 끊기지만 신라 말기에 다시 박씨 혈통으로 왕이 된 [[신덕왕]]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 두 시대에서 모계 혈통을 내세우는 여성들이 쉽게 발견되는 반면, 남성의 사례는 아직 불분명하고 추정의 영역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다. 이와 별개로 조선 왕조의 관찬 사서이자 공식 정사인 [[고려사]]에선 김부식의 둘째 형인 김부일 열전을 통해 김부식이 신라종성(新羅宗姓)이라고 명시했다. >김부일은 자가 천여로 경주 사람이다. 그 선조는 '''신라종성(新羅宗姓)'''이다. >태조가 처음 경주를 두어 [[김위영]](金魏英)을 주장으로 삼았으니, 그가 부일의 증조다. 아버지 김근(金覲)은 국좌제주 - 좌간의대부를 지냈다. 형제는 4인으로, 장남은 김부필(金富弼), 다음 김부일(金富佾), 다음 '''김부식(金富軾)''', 다음 김부의(金富儀)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김부식의 증조부 [[김위영]]이 어떤 신라국왕의 몇 대손인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다. 또는 김씨인 것만 보고 김부일 일가를 신라 종성으로 명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사 김부의 열전을 보면 과거 김부의가 자기 집에서 우연히 '청당지인(靑幢之印)'이라고 적힌 신라의 도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청당은 신라 수도[* 즉 지금의 경북 경주시.]군 편제인 9서당 중 청금서당[* 청금서당의 구성원은 백제인의 후손이었다. 즉 김부일 일가의 조상이 백제인의 후손이었다가, 통일 신라 시기에 김씨를 칭했을 가능성도 있다.]을 의미하는데, 이 기록을 보면 김부식 형제가 경주에서 거주했던 것은 맞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김부식의 본관은 적어도 김부식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경주였다고 할 수 있다. 김부식의 본관에 대한 의문은 김부식이 경주 김씨냐 아니냐 보다는, 김부식과 신라 왕실과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에 가깝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