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복동(1926) (문단 편집) == 생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qsT97ax_Xb0, height=280)]}}}||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wB9f_0qPkiU, height=280)]}}}|| 1926년 5월 1일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출생하여 양산[[보통학교]][* 현 양산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내보내졌다. 그의 언니들은 먼저 시집을 갔다. '''열다섯살'''에 동네 구장과 반장, 일본인에게 속아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위안부'로 가게 되었다. '위안부'로 지금의 [[대만]], [[광둥성]]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자바 섬]], [[말레이시아]], [[방콕]] 등으로 이동했다. 일제 패망 후 수년 후에 귀국했다. 후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재결합 후에 얼마 못가 남편과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홀로 살았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다가 가게가 철거되는 바람에 아파트를 보상으로 얻었다. 나중에는 채소밭 일로 연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세계 곳곳을 돌며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려고 뛰어다녔다. 1992년 피해자임을 밝히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출범했다. 2019년 1월 2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오후 10시 41분쯤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이때 장례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국가원수]]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장례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였다.(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천주교도인데도 고인을 향해 2배를 하였다.)] 향년 92세. 장지는 충남 천안의 망향의 동산. 일본 주요 매체 중에서는 [[아사히신문]]만 별세 소식을 다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