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민재(내야수) (문단 편집) === [[한화 이글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117/2007/10/04/200710042152382227_1.jpg|width=100%]]}}} || 2006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이후부터는 타격 스탯은 낮으나 돌글러브 이미지가 강했던 한화 내야에 큰 힘이 됨으로서 팀 수비 안정화에 공헌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타율 0.273로 타격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김태균]]-[[한상훈]]-[[이범호]]-김민재로 이어지는 철벽내야를 구축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초대형 계약도 아니었기에[* 계약금 5억, 연봉 2억, 옵션 1억.] 숨겨진 FA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좋은 수비 덕분에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승선. 대회 성적은 13타수 무안타 2볼넷 출루율 0.154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애초에 [[박진만]]과 함께 수비만을 보고 데려간 선수인지라 안정된 내야수비를 보여줌으로써 대표팀 금메달에 일조하였다. 2009 시즌이 끝나면 세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제 슬슬 나이를 먹어서 기량이 노쇠화되고 있으므로 다시 장기 계약이 힘들 것 같았고, 본인 스스로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점점 비켜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 코치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2009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며 데뷔 19년차 내야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0년 8월 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그의 은퇴식이 조촐하게 펼쳐졌다. 오랫동안 꾸준한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은퇴식을 할 정도의 레전드도 아니고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은 기간이 4년 밖에 안될 정도로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란 점에서 한화 구단의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침 그 날의 상대팀이 자신이 데뷔한 팀이자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였다. 이 날 경기는 롯데가 한화를 11-3으로 대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