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두봉 (문단 편집) === 최후 === 이후 일개 농민으로 몰락하여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다. 이때 평안남도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남한에 공작원으로 파견되었고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수감되었던 김진계의 증언에 따르면 1962년에 김두봉을 만난 적이 있는데, 김두봉은 같이 쫓겨난 젊은 아내가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제발 유치원 교사로 일하게 해달라고 당국에 탄원하였고 당국이 이를 수용해주어 김두봉과 그 아내가 유치원에서 일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와다 하루키의 북한 현대사에 따르면, 1960년 1월, [[박창옥]], [[최창익]], [[고봉기(북한)|고봉기]], [[김웅(1912)|김웅]] 등을 총살하기 위해 비밀재판이 소집되었을 때 김두봉은 이미 병사한 후라서 재판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두봉과 같이 숙청당했던 [[박의완]]은 이때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유성철의 주장에 따르면 농촌으로 하방당한 후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농촌당원들에게 맞아죽었다고 한다. 유성철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대숙청 시기 소련 [[NKVD]]가 실제로 써먹은 방법이기는 하다. 그리고, [[하앙천]]처럼 김일성종합대학 역대 총장 목록에서 삭제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