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엽(1938) (문단 편집) == 현역시절 == [[6.25 전쟁]]이 터지자 김동엽은 할아버지와 헤어져 부모님을 따라 월남했고, 피난지인 [[부산광역시|부산]]의 토성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경복고등학교]][* 33회 졸업생이다. 처음으로 프로 감독을 맡았던 [[해태 타이거즈]]의 구단주 박건배 회장이 경복고 후배였다.]와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성균관대]]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 어깨 부상으로 인해 잠시 야구를 그만두고 [[조폭|폭력 조직]]의 말단 대원으로 뛴 경력이 있는데, 이 당시 싸움판에서 턱과 치아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치아가 [[영 좋지 않다| 좋지 않아]] 고생했다고 한다.[[https://m.blog.naver.com/donghlee1001/221844687608|고등학교 당시 일화]]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영문학과]]에 시험을 쳐서[* 체육특기생이 아니라 공부를 해서 들어간 것이다. 즉, 고딩 때 딴짓거리를 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한 결과가 저 정도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동엽이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은 [[본고사]] 세대라 지금보다 대학 진학률도 떨어졌고 입시정보도 활발하게 공유되지 않았던 시기인데다 그 본고사가 지금의 수능따윈 울고갈 정도로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셈. 게다가 [[본고사]] 시절 성균관대는 소위 '후기 [[서울대학교|서울대]]'라는 이명이 있을 정도로 입결이 높았다.][* [[허구연]]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술회하길 본인도 공부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야구부원중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자도 있다고 했다. 다만, 허구연은 체육특기자로 고려대에 들어갔음에도 본인이 시험을 쳐서 고려대에 들어갔다는 거짓말을 한 것은 감안해야 한다.] 들어갔다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야구 선배의 권유를 받고 다시 야구를 시작하여 [[2루수]]로 제법 활약을 보였다.[* 다시 야구를 해보라는 말에 김동엽은 다친 어깨 때문에 자신이 없다고 하자 선배는 "임마 지금 너만큼 쎄칸(세컨드, 2루수) 보는 놈도 없다"라고 설득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 야구단|한국전력]]에서 선수로 뛰었으나 폭행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1963년에 퇴단당했는데, 그 이유는 휴가를 받아 저녁에 동료와 외출을 나갔다가 폭력배들과 시비가 붙었고 완력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김동엽이 완승을 거두었으나 상대방 중 한명이 쇄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는 바람에 쇠고랑을 찰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국 어찌어찌 회사에서 무마를 시켰지만 그 대가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한편으로 폭행사건으로 곤혹을 겪던 김동엽이 경찰에서 풀려난 데에는 한전 코치 [[어우홍]]의 형이자 당시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였던 어인영[* 훗날 경남신문 편집국장 역임.]이 뒤에서 손을 써준 덕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우홍은 김동엽과 팀내 사제지간이었지만 서로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았고, 김동엽을 한전에서 쫓아내는 데 앞장선 이가 바로 어우홍이었다. 한전에서 잘린 후, 당시 한전 감독이던 김계현의 주선으로 [[조흥은행 야구단|조흥은행]]에 이적했지만 입단 직전에 조흥은행 광교 본사가 대형 화재로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고, 이 와중에 운동부를 운영할 여력이 없다며 야구부와 여자 농구부를 해체시켜 버리는 바람에[* 그러나 조흥은행은 [[1967년]]에 해체된 호남비료 농구단을 인수하여 다시 여자농구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1970년대 중~후반부터 성적이 하위권으로 주저앉으며 [[1984년]]에 [[만년필]] 제조업체로 유명한 빠이롯트에 팀을 매각하고 여자농구와의 인연을 끊었다. 흥미로운 점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조흥은행을 흡수합병한 [[신한은행]]이 현재 [[WKBL]] [[신한은행 에스버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전신은 '''현대산업개발 농구단'''이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은퇴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