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엽(1938) (문단 편집) == 개요 == ##나무위키:편집지침/특정 분야/문화예술: 문화예술인 문서의 개요 및 평가 문단에서 볼드체, 밑줄과 같은 강조 표현 사용을 예외 없이 금지합니다. 문화예술인 문서의 개요 문단에서 서열을 나누는 서술을 금지합니다. 이는 문화예술인 개인의 문서와 문화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스포츠 팀, 구단, 크루 등)에 모두 적용됩니다.## >제에미, 거 나 참 저 도루가 어드러케[* 어떻게의 [[황해도 방언]].] 세이프네? 턱무하지[* 터무니없다, 말도 안된다의 [[황해도 방언]].] 않간? >아니 기보다 이심판, 오늘 껨 끝나고 뭐하네? 거이 노가리에 쏘주나 한잔 하자우야. >머이 어드래? 아니 기럼 노가리 말고 내 삼겹살 한번 사갔서! 거 박심판도 같이 데려 오라우. >어, 어, 기래! 기럼 거 오비(맥주)까지 한번 까자우 기래! >---- >제기랄, 거 참 저 도루가 어떻게 세이프냐? 너무하지 않아? >아니 그보다 이심판, 오늘 게임 끝나고 뭐해? 거 노가리에 소주나 한잔 하자. >뭐가 어째? 아니 그럼 노가리 말고 내 삼겹살이나 한번 살게! 거 박심판도 같이 데려와. > 어, 어, 그래! 그럼 뭐 오비까지 한잔 까자 그래! >---- >실제로 김동엽의 항의는 경기 상황에 대한 어필보다는 심판과의 잡담이 주된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의 야구인. 지도자 시절에는 [[1971년]] [[건국대학교 야구부|건국대]] 감독을 시작으로 [[1987년]] [[MBC 청룡]] 감독에서 물러날 때 까지 무려 13번의 [[모가지#s-1.1]]를 당한 파란만장한 감독 생활로도 유명했다. 별명은 위 자료사진과 같이 '빨간 장갑의 마술사'였다. 또한 1938년에 태어나 전쟁통에 [[38선]]을 넘어온 "38 따라지"라는 의미로 등번호는 38번을 애용했다.[* [[삼성 라이온즈]] 에서 뛰고 있는 [[동명이인]]의 손자뻘 [[김동엽(1990)|김동엽]]도 특별한 인연은 없는것 같은데 이 등번호를 사용했었다. 그의 아버지인 [[김상국]]도 프로야구 선수였는데 현역 시절 등번호는 2번을 사용했다. 김동엽 본인은 SK에 신인으로 입단했을 당시에 남는 번호 중 하나가 38번이라서 별 생각 없이 골랐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