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도균 (문단 편집) == 생애 == 대구에서 섬유 회사를 경영하던 김정태와 전정임 부부 슬하의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도균은 어렸을 때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며 미술과 음악에 흥미를 가진 평범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사촌형이 치던 전기 기타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록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록밴드 '중성자'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학업보다 음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김도균은 스스로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인근 야산에서 기타 연습을 하다가 1980년 초 대구의 한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였고, 얼마 후 상경하여 4인조 록밴드 '수레바퀴'를 결성하고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에게 발탁되어 밴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백두산 1집은 이전에 유현상이 발표했던 트로트곡들과 몇몇 신곡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신곡들마저 뽕끼가 넘쳐 흘러서 트로트+메탈주법이 혼재된 이도저도 아닌 음악이었다. 때문에 당시 메탈밴드들은 백두산과 같은 무대에 서는 걸 꺼릴 정도였으며 그 음악성 때문에 김도균 또한 뛰어난 실력에도 저평가를 당한다. 하지만 2집의 연주는 헤비메탈 그 자체였고 롭헬포드를 카피한 유현상의 고음역 가성 보컬과 김도균의 화려한 연주가 어우러져 상업성과 음악성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다. 그리고 김도균은 이 시기에 한국 락씬의 최고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친다. 평소 국악을 좋아하던 그는 사물놀이의 강력한 리듬이 헤비메탈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국악+메탈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데 그 결과물이 Center Of The Universe(1988). 타이틀곡 쾌지나 칭칭나네, 연주곡 아리랑 등 길이 남을만한 음악적 진보를 보여줬지만 녹음상태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처참했다. 이 앨범의 수록곡 Not That Kind Of Love는 훗날 3인조로 재편된 백두산 3집에 새로이 실린다. 이후 김도균은 프로젝트 록 인 코리아(Rock in Korea)[* 우리나라 락 역사에 길이 남을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불세출의 보컬 임재범, 90년대 락의 간판 김종서, 한국 전자음악의 선구자 강기영, 후에 히트메이커로 이름을 날리는 손무현, 오태호 등 참여자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당대 한국락씬의 올스타즈 앨범이다.]에 참여하는데 이 때 김도균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연주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그리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임재범과 영국으로 건너가 사랑Sarang이라는 밴드로 활동한다. 이 때 주 레퍼토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탈곡들이나 한국에서 활동하던 곡들이었는데 평범한 메탈사운드에 현지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이에 고심하던 김도균은 자신의 무기인 가야금 주법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상당한 반응[* 관객들은 물론이고 현지 연주자들이 그건 뭐냐며 호기심을 보였다고]에 고무되어 자신의 길은 국악과 메탈의 크로스오버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영국에서 함께 활동하며 세계무대를 꿈꾸게 된 김도균과 임재범은 귀국 후 새로운 밴드를 구상한다. 그리고 리듬파트에 김영진(베이스), 유상원(드럼)을 영입해 슈퍼밴드 아시아나를 결성한다. 당시 이 그룹은 락씬에 굉장한 화제를 몰고왔는데 멤버들이 전부 국가대표급의 실력자들에다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김영진, 유상원은 H2O, 시나위 등 굵직한 밴드들을 거친 연주의 달인들이다] 세계진출을 목표로 영국 스튜디오에서 현지인들과 작업을 했기 때문. 가사도 한 곡 제외하고(Missing You) 전부 영어에 음악스타일도 한국 특유의 느낌을 쏙 뺀 정통 브리티쉬 하드록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메탈이 끝물이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이들이 추구하던 음악스타일은 굉장히 올드한 것으로 취급되던 때라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여기에 레코드사 도산으로 사실상 활동조차 해보지 못하고 종료. 그나마 회자되는 활동은 일본의 메탈그룹 라우드니스 내한 때 오프닝에 섰던 것이다. 이후 1999년 김도균 그룹을 거쳐 2009년부터 다시 록 음악으로 돌아온 유현상과 함께 백두산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에는 김태원, 신대철과 함께 D.O.A.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2011년 KBS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 밴드 시즌1》에서 코치를 맡았다. 젊은 시절부터 록 음악과 국악의 결합을 계속 탐구하고 있다. 흔히 대중들에게 [[부활(밴드)|부활]]의 [[김태원(음악인)|김태원]], [[시나위(밴드)|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과거에는 속주로 [[신대철]]과 자웅을 겨루던 인물이었다. [[기타]] 실력을 기르기 위해 [[지리산]] 위에 올라가서 [[피크#s-1]] 박스 한 통을 다 비울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는 [[전설]] 혹은 [[허풍]]^^으로 유명하다. 이 전설에 옵션으로 붙는 얘기론 피크가 피킹 한번에 갈려나갈 정도로 내구성이 [[꽝]]이라서 생각보다 금방 하산했다는 얘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