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대익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412000039591.jpg]] || || (출처 : 포토로) ||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 경성대를 졸업하고 1996년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알고 보면 그도 황금의 92학번 중 하나. 신인 시즌 제한된 출전 기회 속에서도 .283의 타율과 13도루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7년 롯데는 당시 실업팀 [[현대 피닉스]] 소속이었던 [[문동환]]의 계약을 해지하고 롯데로 입단시키기 위한 댓가로 리드오프 [[전준호(1969)|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로 5억에 현금 트레이드하게 되는데, 롯데가 기꺼이 전준호를 포기한 배경은 바로 김대익이 전준호의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전준호를 트레이드 시키지 않았다면, 롯데 역사는 달라질수 있었다...는 야만없.] 실제로 전준호가 현대로 떠난 뒤 첫 시즌인 1997년에는 롯데의 1번 타자로 자리잡아 .272의 타율과 42도루를 기록하며 전준호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받았다. 커리어하이 시즌인 1998년에는 .292의 타율과 136안타, 27도루를 기록하며 리드오프로서 만개하나 싶었지만, 이듬해인 1999년 롯데가 시즌 내내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질주하며 공포의 타선을 뽐냈음에도 김대익 혼자만 .242의 타율로 부진하며 기세가 꺾였다. 이후로도 2001년까지 2할 중후반대 타율과 세 자릿 수 안타, 두 자릿 수 도루를 꾸준히 기록해주면서 그냥저냥 준수한 외야수로 뛰긴 했지만 한 번도 3할 타율은 못 기록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롯데가 한창 [[8888577|비밀번호]]를 찍던 2003년에는 .198의 타율로 팀 성적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2004년에는 주장을 역임했으나 시즌 도중이던 7월 12일 ~~롯데 주장 자리의 저주 때문에~~[* 2000년부터 롯데의 주장을 맡아 왔던 [[마해영]], [[조경환(야구)|조경환]], [[손인호(야구)|손인호]]는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었고 [[염종석]], [[손민한]]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고 [[정수근]]은 '''사고치고'''...][* 그 와중에 김대익과 조경환은 모두 주장을 맡고 있던 '''시즌 중'''에 트레이드되었다.] [[박석진]]과[* 사실 원래 삼성 선수였다. [[김종훈(1972)|김종훈]],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것.] 함께 [[김승관]], [[노장진]]과 맞트레이드되어 정든 롯데를 떠나고 삼성으로 이적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