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관홍 (문단 편집) === 세월호 참사 ===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잠수사로서 구조팀에 참가하였다. 그가 사고 직후 바로 내려간 것은 아닌데, 아내는 '어차피 당신이 내려가도 지금 500명이나 내려가 있다고 방송도 그런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는 잠수사들에게 계속 연락도 오고, 계속 신경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가라고 허락했고, 김관홍은 그날로 장비를 싸들고 현장으로 찾아갔다. 알고 보니 500명 이야기는 순 거짓말이었고, 그 중 그 환경에 실제로 잠수가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였으니[* 이들이 철수하고 나서 9월 중순쯤, 이춘재 당시 경비안전국장이 유가족들에게 해준 이야기가 정말 어이가 없는데, '그때 있던 잠수사들이 우리나라에서 특A급이고 지금 있는 잠수사들은 C급 정도 된다'는 것. 유가족들이 '다 쫓아내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이제 와서 하면 어떡하느냐?'고 따지자, 다시 데려오면 된다고 했다고(...) 물론 그런 날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보다 더 전에 이들이 현장에 있을 무렵에 있었던 일은 더 기가 막힌다. 자기들 잘못을 민간잠수사가 못해서 그렇다고 뒤집어씌웠다고(...) 그러면 상황을 모르는 유가족은 당연히 교체하라고 난리를 치고 말이다. 거기다 힘내시라고 유가족들이 음식이라도 많이 쏘면 이 작자들이 중간에서 다 슬쩍하고 떼어먹고, 실제로 잠수사들에게 전달되는 건 무슨 [[오병이어의 기적]] 하라는 거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양이었다고 한다...] 김관홍이 진도에 내려간 것은 현장 상황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 자신에게는 불행이 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물 속에서 라인을 연결하고 선내 집기를 정리하여 희생자 유품을 올려주는 등 사고자 수습 작업을 한 것은 바로 그를 포함한 민간잠수사 스물다섯명이었다. 이들이 해경에게서 전달받은 도면이나 참고자료, 수색 시 유의사항이나 수색장소 등에 대해 들은 설명 등은 전혀 없었다. 또 해경 측에서는 심해잠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없기에,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거나 민간잠수사들이 세월호 안에 들어가 시신을 찾아내 끌어안고 나오면 이를 수습하는 일만 했을 뿐이다. 기분나쁜 비유지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꼴. 나중에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은 1차 세월호 청문회에서 '민간잠수사가 수면까지 올라오면 거기서부터 함께 한 것', '역할을 나눈 것'이라며 회피성 변명을 주워섬기면서, 결국 선체에 들어가서 시신을 수습하는 데 있어 해경이 한 것은 없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해경에 의해 무리한 요구를 받기도 했다. 해수부장관이 유가족들한테 잡혀있다느니 하면서, 물의 상황이 좋지 않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무작정 물 속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는 5월 1일 수색 과정에서 물살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긴급하게 병원에 이송되었는데, 병원에서 한 달간 잠수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응급처치만 받은 후 사흘 만에 현장에 복귀하였다. 목과 등 등에 부상을 입었다. 5월 5일 무렵에도 또 챔버 안에서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시 곧 돌아왔다. 잠수를 못한다면 호스라도 잡겠다(물 밖에서 돕는 일)면서. 그러다가 민간잠수사들은 2014년 7월 10일 갑작스럽게 해경으로부터 철수해달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사실상 갑자기 쫓겨난다. 그는 반발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그렇게 철수한 이후에도 그는 당시 입었던 신체적 외상 및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그의 생전 인터뷰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냥 현실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해서 묻고 싶은 거야. 알고 싶은 거고.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요. 생활이 안돼. 몸이 다쳐서.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내가 왜 그것 때문에 끔찍한 생각도 해야 되고. 내가 왜...내 가족한테 위해를 가할까봐 밤마다 나가가지고 이래야 됐냐고? 또 내가 왜? 잠수사. 그 잘나가는 [[가오]] 있는 잠수사가 대리기사가 되어가지고 막 이래야 되냐고? 내가 왜? >내 대면을 하다보니까 내 스스로 나를 보니까 아, 너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대한민국]]이라는 [[착각]] 속에서.''' >이 정상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내가 정상적일 수 있나? 내가 일해왔던 상황은, 그 세월호 상황은 정상이 아니었어. 국가권력...지금도 한 게 뭐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 내가. 그 당시 당신들은 뭐 하셨는지? 나는 당신들 뭐 하는 걸 못 봤는데. 뭐 하셨는지? >우리는 수중에서 더듬더듬해서 머리로 그린단 말입니다. 머리에서 그려지는 게...제 머릿속에 자꾸 생각나고 그러는데. 하루 한 번 들어가야 할 현장을 많게는 네 번, 다섯 번 들어간 분들도 있어요. 다른 잠수사들이 그런 이야기를해요. 왜 그렇게 일을 했냐고. 아니 사람이 없는데..그럼 어떻게 해요..[br]진짜 중요한 것은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살렸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제대로 구할 수만 있었다면...그런데 그 누구도 구하지는 않고 상황을 보고,,報告,,, 보고, 보고(만 하고)... >바지선은 가만히 있고 잠수사들만 나올 때, 비바람 치고 파도치고 그러는데 작은 새들이 날아와요, 작은 새들이. 그 추위에, 강풍에, 비바람에....[br]작아요 새가. 되게 예뻐요. 그 새소리도 예뻐요. [br]빗소리에...저들이 울부짖는 게 자기네들 두고 떠나지 말라고 울부짖는 느낌... 동료 잠수사들이(그는 함께 목숨걸고 일한 동료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 회상할 만큼, '유가족들이 자신의 가족들 같고 희생된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 같아서', '좀더 있으면 수온이 올라가서 많이 상하니까, 조금이라도 온전할 때 올려주고 싶어서' [[잠수병]]으로 건강이 상해감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잠수와 수색을 했던 그는 결국 후유증으로 본업인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낮에는 아내의 꽃가게 일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 활동을 이어왔다. 정부로부터 민간잠수사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치료비용을 지급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육체적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인을 기리는 사촌 형 김형주씨의 글에 따르면 김관홍은 후배들의 생활고를 부담하였고 이것이 그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세월호의 인양이 준비될 무렵, 유가족들이 동거차도[*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섬. 고작 1.5km 거리다. 참고로 생존자들이 구조 직후 1차로 옮겨진 곳이 바로 옆에 있는 서거차도이며, 그 다음에야 진도 팽목항으로 갔다.]에서 머물며 인양 상황을 살펴보며 기록할 때 이들과 같이 기거하며 돕기도 했다. 이때 유가족들과 친해지며 수색과 수습 과정에서 해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2015년 12월 20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노컷v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였다. ()는 문맥상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으로 작성인이 넣었음을 밝힌다. >전문가분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트라우마? 죽음에 대한 각인이다. 죽음에 대해서 느끼고 만지고 냄새 맡고 이런 뭐가 각인이 된거야 …. 그러니까 생존자들도, 내가 구하려고 했던, 못 살린 사람들 눈빛이 살아있을 거라고. 그거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각인이라고 … 죽음이 이제 너무 쉽게 생각되는 거야 우리한테…. 아 이런 말 하면 또 안되는거야? >모든 건 바뀌었어요. 모든 게 몇 도 몇 도로 바뀐게 아니라 왜 사람들은 할 말을 안하고 다른 짓거리들을 하고 … 딴 말로만 뱅뱅 돌까? [[언론]]은 왜 이런 얘기를 안 하나. >아니 우리가 한 마디로 말하면 바깥에서 막일하는 사람이에요. 물 속에서 막일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생각보다 더 많이 배우고, 권력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왜 저것밖에 안될까. 진짜 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네. 처음에 우리가 살려고 얘기를 한 거에요. 그런데 지금 남들은 다 내 주변 지인들은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지 말래. 다친다고. 잊으래. 아니 잊을 수 있으면 내가 잊었지, 지울 수 있으면 지우고. 아니, 그 시점에 삭제를 시켜버렸으면 좋겠는데 현재까지의 모습을. 약을 먹어도 안 되고, 술을 먹어도 안 되고, 지인들이 떠나요. 나도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나조차도. (지인들이) 나를 위해서 얘기를 해줘요. 나를 위해서. 그런데 그게 상처가 되는 거야. >우리가 자전거가, 이것도 정혜신 박사님이 하신 얘긴데, 자전거가 왼쪽으로 쓰러져요. 그러면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 안 쓰러지는데 우리는 안 쓰러지려고 반대로 꺾는다고, 그래서 쓰러진다고. 아 내가 여태까지 내가 살려고 하는 행동들이, 나는 살고싶어서 한 행동이, 저는 많이 좋아진 게 맞아요. 점점점 좋아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이유가 나는 왼쪽으로 쓰러지니까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던 거야. 마주 대한 거야. 객관화시키려고 하고. 내가 왜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가족들한테 상처를 주고 있고. 유가족들한테 왜 내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는지를……. >정부를 저는 비판한 게 아녜요. 싸운 게 아니야, 몸부림이고, 이거 아닙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소리 없이 탄압하는 거 이건 탄압이에요. 내가 왜 탄압을 받아야… 내가 [[좌파]]예요? 좌파가 뭔데? 그런 사람들이 좌파가 아니야. 단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일 뿐이야. 여기 [[민주주의]]잖아요. 생각이 다를 수 있잖아. 들어야지 같이 얘길하고 합의점을 찾아가야 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