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원(야구) (문단 편집) == 프로 선수 시절 == 1993년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고교 시절부터 특급 투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중앙대 시절에는 [[박찬호]]보다 먼저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할 정도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1993년 데뷔 시즌 초에는 [[선발 투수]]로 몇 게임에 등판했으나 곧바로 마무리로 전환, 그 해 129⅔이닝을 던지면서 9승 3패 23세이브(32세이브포인트) 방어율 1.11의 성적으로 구원부문 2위에 오르는[* 1위는 그 해 마무리로 전환하며 0.78의 시즌 방어율 최고 기록을 세운 [[선동열]]이다.] 대활약을 펼쳤다. 말이 2위지, [[선동열]]도 그렇고 공헌도로 따지면 [[오승환]]은 거뜬히 능가한다.(마무리가 규정 이닝을 채웠으니..) 6회 이후 항시 대기하면서 선발진의 뒤를 사실상 홀로 받쳐 주었다.. 김경원의 눈부시지만 눈물겨운 투구로 인해 OB는 오랜시간의 암흑기를 청산하고 3위에 오른다. '''이 해 그가 올린 1.11의 방어율은 역대 단일시즌 방어율 가운데 [[선동열]]의 0점대 방어율 3회(1986,1987,1993년) 다음인 역대 4위의 기록이며, [[선동열]]의 통산 방어율(1.20)을 능가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아마 많은 야구인들이 아는 [[마구마구]]에서 [[엘리트]] 카드를 줘도 인정할 정도이다. 결국 [[http://damookka.blog.me/220641326052|2016년 2월 29일에 엘리트가 추가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선동열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해 기록한 조정방어율(ERA+)은 '''295'''로 역대 프로야구 7위 기록에 해당한다.[* 조정방어율이란 리그평균 방어율을 참고하여 해당 선수와 비교해 얼마나 잘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리그 평균을 100으로 잡으며 만약 조정방어율이 200이라면 그 투수는 그 해 리그 평균보다 2배나 잘했다는 소리. 김경원이 기록한 295라는 수치는 '''그해 리그 평균 투수들보다 3배 잘했다는 소리.''' 참고로 역대 조정방어율 TOP 1위~6위는 모두 선동렬이 기록하고 있는데 1위는 93년 선동렬이 기록한 ERA+ 419] 다만 1993년은 [[양준혁]], [[이종범]], [[박충식]], [[이대진]],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구대성]] 등의 특급 신인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해였기에, 그해 신인왕은 타율 .341와 23홈런 90타점을 기록한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에게 돌아갔고 김경원은 신인왕 투표에서 이종범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데뷔 시즌에는 150km에 육박하는 묵직한 강속구로 이닝당 1개 가까운 삼진을 잡아내는 파워 피처였으나 첫 해의 무리한 연투와 함께 1994 시즌 초반에 찾아온 부상으로 이후에는 다시는 데뷔 시즌의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1999년 시즌 중 [[전상렬]]과 [[홍원기]]를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지만 큰 활약 없이 2001년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비록 전성기는 극도로 짧았으나 1993년 단일 시즌에서 보여준 능력만큼은 역대 구원 투수 가운데서도 손꼽힐 수준이며, 침체에 빠져 있던 OB를 암흑기로부터 구출한 1등 공신으로 기억해야 할 투수. 이런 눈부신 성적을 거둔 것과는 별개로 [[허용투수]] 중 한명이기도 하다. 2000년 5월 19일 대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6회초에 구원 등판해 [[박경완]]에게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헌납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