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건태(배구) (문단 편집) == 심판 경력 == ||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406201635778055_53a3e74f0694b.jpg|width=100%]] || ||<-2> 그의 [[리즈 시절]]이자 '''코트 위의 포청천'''으로 불렸던 심판 시절. ||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하고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던 그는 선배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못 이겨 1985년에 심판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5년 원로 국제심판이던 김순길의 권유로 심판의 길에 처음 들어서게 된다. 그는 '''"선수로 못 이룬 세계 초일류의 꿈을 심판으로 이루겠다."'''며 다짐하고 본격적으로 심판에 입문하게 되어 1990년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수백 편의 경기 비디오를 틀어놓고 판정을 연구했으며,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는 국제 무대에 서기 어렵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코트의 판관"으로 권위를 갖추기 위해 항상 짙은 색 [[양복]]에 [[넥타이]]를 갖춰 맸으며, 체력 강화를 위해 [[술]], [[담배]]를 멀리하고 [[조깅]]과 [[등산]]을 생활화했다. 자신감과 객관성에 근거한 확실한 판결로 코트의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중요한 경기에는 어김없이 그가 심판을 맡았다. 그리고 세계에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에도 꾸준히 주심을 맡았으며,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를 오가며 심판으로 활약하다 2013년 12월 29일 [[아산이순신체육관|아산]]에서 열린 [[서울 우리카드 위비|우리카드]] vs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한국전력]]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파일:external/www.volleyballkorea.com/1701_10752_5357.jpg]] KOVO가 마련한 은퇴식에서 김건태 심판이 배우회 김광호, 이한구 원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후에는 2016년까지 KOVO에서 심판위원장을 지냈는데, 심판위원장으로 재직했을 때 후배 심판들의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수첩에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영역은 달라도, 야구로 치자면 [[송인득]]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를 하면서 써서 모아 둔 야구 기록 노트와 비슷한 게 되겠다.] 2013년 12월부터 2020년까지 7년 간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아카데미에서 심판들을 상대로 교육을 맡았다. 2020년 12월 18일, [[V-리그]]의 [[https://sports.donga.com/article/all/20201220/104558280/2|경기운영본부장으로 선임]]되었다. KOVO에 복귀하자마자 12월 22일에 심판 30명을 연맹 회의실로 불러 모아 객관식 23문항, 단답형 약술 3문항 등 총 25문항으로 이뤄진 '''영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고 한다.''' [[로베르토 산틸리|외국인 감독]]도 있고, 외국인 선수만 13명이 뛰는 [[V-리그]]에서 이들을 상대로 심판이 영어로 간략하게 규칙, 용어 등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