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자(상) (문단 편집) == 개요 == [[상족]](商族)의 왕실 출신이자 폭군으로 전해지는 [[상나라]] [[주왕]]의 삼촌 또는 서형(庶兄)으로 전해진다. [[상나라]] 영토의 북쪽 끝으로서 토방(土方), 귀방(鬼方) 등으로 불릴 정도로 북방민족의 세력이 강성하던 곳인 '''기(箕) 땅에[* 현 [[산시성(산서성)]] 진중시 타이구구다.] 봉해진 [[자작(작위)|자작]](子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달리 공자, 맹자에 붙은 '자'는 '선생님'이라는 뜻의 '부자'(夫子)의 약자로, 작위가 아니다.][* 자작에 봉해지는 자들은 사실 '이민족 우두머리'라는 뜻에 가깝다.] 사후 1000여 년이 흐른 [[원나라]] 시기 인헌공(仁獻公)에 추봉되었다.[* 《新元史.卷87》封微子爲仁靖公,'''箕子爲仁獻公''',[[비간|比干]]爲仁顯忠烈公,加封漢[[장비|張飛]]爲武義忠顯英烈靈惠助順王.] 본명은 서여(胥餘) 또는 수유(須臾)이며, 상나라의 왕성은 '자'(子)였고 기 땅에 봉해졌으니 '''자성 기씨'''(子姓箕氏)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풀네임은 자서여(子胥餘)/자수유(子須臾) 혹은 기서여(箕胥餘)/기수유(箕須臾)가 된다.[* 당시 기준으로 따지면 '기서여'나 '기수유'가 맞다. 전국시대까지 성을 쓰는 건 여자였고, 남자는 씨를 썼다. 예를 들어 진나라 [[시황제]]는 성이 '영(嬴)', 씨가 '조(趙)', 휘가 '정(政)'이고, 현대에는 이름이 '영정(嬴政)'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조정(趙政)'이 맞다. 후세로 내려가며 성과 씨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며 성을 주로 쓰게 되어 현재는 '자서여'나 '자수유'로 더 잘 알려져있다.] 한국인에게는 '''[[기자조선]]설'''로 알려진 사람.[* 사실 기자조선 자체가 현대 한국 사학계에서는 고고학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보니, 기자조선을 따로 배우지 않는 이상 기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한국인 역시 많다.] 관련 논쟁으로 인해 기자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춘추전국시대]] 문헌인 《[[상서]]》(尙書), 《[[주역]]》(周易), 《[[논어]]》(論語) 등에 공통적으로 현인(賢人)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기자가 고조선의 군주가 되었다는 것은 회의적이라도 '''기자라는 사람이 고대 중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실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