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사단 (문단 편집) === 실존 기사단 === * [[가터 기사단]] * [[교황 훈장|교황 기사단]] * [[구출기사단]] * '''[[구호기사단]]'''(몰타 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 * 그리스도 기사단 1318년에 포르투갈의 성전기사단원들이 국왕 디니스 1세의 중재로 교황의 허가를 받아 만들었다. 포르투갈 지부장이 초대 기사단장이 되는 등, 성전기사단의 포르투갈 지부가 재산과 조직을 유지한 채 이름만 바꿔서 재창단한 것으로, 성전기사단의 후예답게 [[대항해시대]]에 놀라운 활약을 한다. 기사단 영지에서 나오는 돈으로 아프리카 해안의 탐험비를 충당하고, [[항해왕자 엔히크]] 같은 왕족들이 기사단장을 맡으며, [[바스코 다 가마]] 같은 항해자들이 기사단원으로 있는 등 포르투갈의 황금 시대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기사단. 1910년 혁명으로 해산되었으나 1917년 재창단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포르투갈의 대통령이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 검은 새 기사단 사부아 백작 아메데 6세가 1350년에 만들었다. 아메데 6세는 1353년 부르앙브레스에서 열린 기마 무술 대회에서 12명의 수행 귀족들과 함께 온 몸을 녹색으로 휘감고 등장하여, 사람들로부터 '녹색의 백작'이라고 불렸다. 또한 아메데 6세는 용맹함과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도 유명했다.[* 출처: 중세의 기사들/ 에마누엘 부라생 지음/ 임호경 옮김/ 동문선/ 99~100쪽] * 자귀 기사단 실존하던 '''[[여기사]]들로 구성된 기사단'''. 1149년 스페인 [[카탈루냐]]의 도시인 토르토사를 공격한 무어인들을 도시의 여자들이 갑옷을 입고 무기외에도 손도끼등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가져와 무장하여 도시를 지킨 공로로 기사단이 창설되었으며 도시를 지킨 여성들은 기사 작위를 받고 면세와 발언권등 각종 특혜를 그 여성 후손들까지 누리게 되었다. '자귀'란 [[도끼]]의 일종이다. * [[드래곤 기사단]] *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 * 몬테사 기사단 * [[산티아고 기사단]] * 성묘 기사단 * 성 스테파노 기사단 [[피렌체]] 공화국의 후신인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만든 기사단.~~[[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이라고 쓰고 해적단으로 읽는다]]~~ 구호기사단과 더불어 이슬람 상선들의 악몽이었던 기사단. [[레판토 해전]] 이후에 창설된 기사단으로 구호기사단과 달리 성직자들이 중심으로 세운 기사단은 아니었지만,[* 구호기사단의 단원들은 일단 결혼이 금지된 일종의 수사들이었다. 하지만 성 스테파노 기사단은 그런 규정이 없어서 단원들이 결혼도 할 수 있었을 뿐더러 유부남도 참가할 수 있었다고. 물론 귀족이라는 전제가 필요했다.] 구호기사단 못지않게 기독교도 노예 구출을 명목으로 이슬람 선박을 약탈하고 심지어 [[레반트]] 지역에 상륙하여 약탈까지 하였다. 오죽 심했으면 콧대 높은 [[오스만 제국]] 술탄이 직접 성 스테파노 기사단의 후원자였던 토스카나 대공에게 자제를 '''부탁'''하고 이를 대가로 통상 수교를 요청했을까. 하지만 상공업이 중심이었던 공화국 시절과 달리 농업 중심이었던 토스카나 공국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럼 왜 해적질 하는지?~~ 덕분에 성 스테파노 기사단의 기항이었던 리보니아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승리와 이슬람 교도 노예들을 묘사한 부조가 대놓고 있다. 만화 [[헬싱]]에도 동명의 기사단이 나오는데 이를 참조한 듯.(아예 토스카나 군단이라고 대놓고 [[오마쥬]]하고 있다.) * 성 미셸 기사단 1469년 8월 1일,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가 프랑스의 수호성인들 중 한 명인 성 미셸의 이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 현재 프랑스의 관광 명소인 몽생미셸 수도원의 홀 안에서 이 성 미셸 기사단의 창설 기념 행사가 벌어졌는데, 총 36명의 대공들과 귀족들이 참석하였고 수도원에 들른 성지 순례자들의 조개들로 장식된 황금 목걸이를 나눠받았다. 성 미셸 기사단의 표어는 이멘시 오세아니 트레모르(Immensi Oceani Tremor)였는데, '거대한 대양(바다)의 공포'라는 뜻이었다. 다만 이 성 미셸 기사단에 입단하려면 그 전에 입단했던 모든 기사단의 회원 자격을 포기해야만 했다.[* 출처: 중세의 기사들/ 에마누엘 부라생 지음/ 임호경 옮김/ 동문선/ 240~241쪽] * '''[[성전 기사단]]''' * 알칸타라 기사단 * 아비츠 기사단 * 칼라트라바 기사단 * 코끼리 기사단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세가 1458년에 만들었다. * [[https://ko.wikipedia.org/wiki/콜럼버스_기사단|콜럼버스 기사단]] [[1882년]] [[미국]]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 발족하였으며, 현존하는 기사단 중 가장 회원이 많고(약 180만 명) 활동이 활발하다. 때문에 간혹 음모론의 표적이 되기도. 한국 지부도 [[2014년]] 창립되었고 [[2018년]] 아시아지부로 승격되었다.[[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97372|#]] 다만 진짜 기사단은 아니고 대이민 시기 카톨릭계 이주민들의 친목, 봉사 단체이다. * '''[[튜튼 기사단]]''' - [[독일 기사단국]] * 황금양모 기사단 [[부르고뉴 공국]]의 [[선량공 필리프]]가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공주와의 결혼을 기념하여 1430년 초에 만든 기사단. [[잔 다르크]]가 그해 5월에 콩피에뉴에서 부르고뉴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혔기에 잔 다르크와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도 있다. 부르고뉴-발루아 가문이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결혼으로 흡수된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사단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리스|헬라스 지역]]의 이교로 배척받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금양털|황금양모]]라는 이름을 기사단 이름에 붙여서 논란이 되었는데, 필리프는 이름에서의 '양모'는 구약에서 [[기드온]]의 일화에 나온 그 양모라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 황금 태양 기사단 정식 명칭은 '황금 태양의 국왕 기사단'. 이름처럼 프랑스 국왕인 [[샤를 6세]]가 1410년에 만들었다. 다만 이 기사단의 존속 기간은 매우 짧았다. 왜냐하면 창설자인 샤를 6세가 매우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데다가,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침공하는 [[백년전쟁]]의 와중이라서 기사단 운영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중세의 기사들/ 에마누엘 부라생 지음/ 임호경 옮김/ 동문선/ 139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