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병 (문단 편집) ====== 충돌 ====== || [[이미지:Miroir_historia.jpg|width=100%]] || || 창을 겨누며 돌격하는 기병들. 1335년경 그림 || || [[이미지:battle_of_crema_1515.jpg|width=100%]] || || 크레마 전투. 1515년경 제작 || 기병대의 진형은 크게 얇은 횡진(橫陣, Line)과 두꺼운 종진(縱陣, Column)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쪽이든 회전에서 대열을 이루고 돌격하는 기병들은 무거운 장화나 다리 갑옷을 신지 않으면 짓눌려서 다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다리를 딱 붙인 채 느린 속도로 달렸다[* 이 때의 훈련방식이 현재 영국근위기병대에 남아있다.[[https://youtu.be/A0TYzWi6q6E?t=99|링크]]]. 12-13세기 기사문학의 표현을 빌리면 '장갑이나 과일을 위에 던져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창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기병 연구자인 프랑스 역사학자 프레드릭 쇼비레(Frederic Chauvire)에 의하면, 이렇게 무릎과 무릎을 맞댄 밀집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병의 돌격은 달리기 좋은 지형에서조차 충돌 직전 최고 속도가 빠른 캔터나 느린 갤럽(15㎞/h 전후) 정도로, 사람이 뛰어서 따라잡을 수 있을만큼 꽤 느린 편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퀴레시어들의 사례를 대입하면 지형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느린 캔터로 충돌한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의 [[기병#s-2.4.1|기동 속도]] 항목을 참고. 때문에 많은 군사 저술가들이 [[https://youtu.be/4WC4Ylk1mpM?t=37|오해]]의 여지가 있는 충돌(collision)이라는 용어 대신에 교전(engagement), 접촉(contact), 강습(onset), 침범(boarding)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양측 모두 똑같이 잘 지휘되고, 똑같이 지휘관을 신뢰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확신을 가지며, 똑같이 용감할 때, 두 기병대의 교전(meeting)이 발생할 수 있다. >'''이후 강습(boarding)이 시작되지만, 충돌(shock)은 아니다.''' >양측 기병대가 서로 접근할 때, 말과 기수는 상대방과 전속력으로 부딪혀서 무익하게 박살날 것임을 실감하며 이를 본능적으로 자제한다.[* What can happen is the meeting of two cavalry when they are equally well conducted, equally confident in their means and in their chief, equally brave.[br]There is then boarding, but not shock.[br]At the moment of approaching there is an instinctive restraint in the horse, in the rider, who feels very well that it would break unnecessarily by hitting the enemy at full speed.] >---- >Pierre Marie Burnez, ''Notes pour le cours de tactique applique a la cavalerie, monographie'', 1889 기병 충격 전술은 속력이 느려지더라도 진형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유리했으므로 충동적이고 단순무식한 기사의 이미지와 달리 인내와 규율이 가장 중요했다. 1220년대에 편찬된 [[윌리엄 마셜]]의 전기에는 [[토너먼트]] 단체전에서 밀집대형으로 동료들과 열을 맞추어 일정한 속도로 진격한 기병대가 무질서하게 돌진한 상대편 기병들을 물리치는 장면들이 묘사된다. >'''[[청년왕 헨리|왕]]의 부대는 훌륭한 밀집대형으로 모여 섰지만''', '''상대편은 그렇게 하는 것을 멸시하며 거부했다: 수적인 우세를 믿고 거만한 자신감을 내보이면서, 그들은 어지럽게 뒤섞여 돌격했다'''. >예선전(preliminary)이나 준비운동용 창시합(warm-up joust)은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서 진격해 젊은 왕의 부대로 무질서하게 뛰어들었고, 왕의 부대는 전의를 불태우며 사납게 맞서 싸웠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철퇴가 머리를 깨부수고 칼이 머리와 팔을 베어 가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던 측이 더 못 싸웠다: '''전혀 서로 뭉치지 못하고, 대형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돌격했기 때문에, 그들은 빠르게 격퇴당했고 뒤로 휘청거리며 쫓겨났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 >[[윌리엄 마셜]]은 왕의 곁을 떠나서,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적 부대 하나를 뒤쫓아 말을 달렸다. 그는 강한 기세로 적들 가운데 돌격해서 기사 한 명을 쓰러뜨렸지만 그를 포로로 잡기 위해 멈춰서지 않았다: 그는 누구라도 진실한 증언을 할 수밖에 없을 그런 (흠 없는) 공적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공격들로 도망칠 방향을 가르쳐주며 적들을 물리치고 쫓아냈다. >이후 다른 부대가 수적 우위를 앞세우며 윌리엄 마셜에게 덤벼들어서 그를 젊은 왕이 있는 대열로 몰아붙였지만, 그들은 윌리엄 마셜을 더 추격하지 않고 전장을 떠났고, 그 싸움에서 윌리엄 마셜이 보인 무용은 그것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에게 커다란 존경을 가져다주었다.[* '''His side drew up in good and serried order, but their opponents scorned to do so: oozing proud confidence because of their mighty numbers, they charged in disarray to meet them before their lists. '''[br]There were no preliminaries or warm-up jousts![br]They went straight at it with all their might, storming in disorder at the Young King's battalion, who met them fiercely, fired to fight well.[br]You'd have seen maces smashing down on heads, swords cutting through heads and arms.[br]And the over-confident came off worse: '''charging as they were with no formation, not keeping together at all, they were quickly routed and sent reeling back, the first to arrive the first to leave.'''[br]The Marshal left the king and rode after a troop who were trundling off in retreat; he charged into their midst with such force that he brought a knight crashing down, but he didn't stop to take him captive: he was bent on giving such an account of himself that all who saw him would have to bear true witness![br]He drove them back and sent them packing, showing them the way with fearsome blows.[br]Another troop now fell on him in numbers, forcing him back to the Young King's lines; but with that they left the combat, in which the Marshal's display had won him mighty esteem that day from all who'd witnessed it.] >---- >Nigel Bryant, trans., ''The History of William Marshal'', 2016. 창기병들끼리 맞기창돌격을 했을 때의 대응방법은 이렇다. >기병 두 명이 공격할 때, 창으로 첫 교전을 할 때. 그때 너를 지킬 방어장비가 있다면 상대의 말을 조준하는 것이 보통 효과적이다. 창대 중간을 붙잡고 있다가, 상대의 창공격을 비껴내라 >When two horsemen come to fight, in the first encounter of the spears, it is often useful to aim our spear at the opponent's horse, as long as we have defensive arms to protect our body. We should hold our spear by the middle, and deflect the opponent's spear-encounter. >---- > Pietro del Monte(1457~1509), Petri Montii Exercitiorum Atque Artis Militaris Collectanea in Tris Libros Distincta (1509) 다만 기창돌격의 경우 흔히 알려진 만큼 강한 위력을 가지지 못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큰 충격을 줄 때 공격자가 받는 반발력도 엄청났기 때문. 이러한 충돌 시의 반발력을 버텨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리로, 사용에는 상당한 완력과 단련이 요구되었다.[* 기창돌격은 반발력을 팔로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등자를 이용해서 온몸으로 반발력을 억제시키게 되는데 이때부터 개인의 단순 완력만을 믿지 않고도 기창돌격이 가능해졌다. 등자의 발명 이전까지는 제대로된 차지가 불가능 했는데, 그 시절에는 돌격하여 창으로 찌르는 순간 창에서 손을 놓아 반발력을 최소화 시키는 전술을 구사하였고 이는 효과적인 공격법도 아니며 묘기 수준의 기량을 요구했다.] 또한 갑옷을 뚫지 못해도 충격만으로 직격당한 자가 중상을 입는다는 낭설이 있지만, 일반 창보다 전체 질량이 큰 긴 창이 가진 질량과 말의 속도로 만든 운동 에너지 정도로 즉사할 정도의 운동에너지를 만들어 내기에는 질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더라도 창을 들고 있는 기사도 같은양의 반작용을 얻어야하는데 차지를 건 기사가 멀쩡할리가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이런 경우 전체 질량은 무겁지만 부분 질량은 일반 창보다 더 가벼운 기창이 먼저 부러지게 되어 모든 운동 에너지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6세기 프랑스의 군인이었던 프랑수아 드 라 누(François de la Noue)는 갑옷입은 기병이 랜스에 찔려죽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였고, 실제로 [[창기병]]들은 시기불문하고 갑옷의 방어력과 전투법의 향상이 있은 후에는 기창으로 적 기병을 상대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덜 중무장한 군마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youtube(OIzLImEKEYQ)] || || 프랑스 흉갑기병 훈련. 1896년 || 중요한 것은 실제 기병은 영화 등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어디를 가든 항상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말]]도 생물이고 당연히 무게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군마]]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도, 말도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는 오래 달리기는 힘들다. 각종 매체에서는 기병이 등장할 때면 어디를 가든 --두다다다-- 풀 갤럽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사료에 묘사되는 보병방진을 상대로 한 충격기병돌격에서 갤럽으로 최고 속력을 내는 구간은 목표물 50m 전방 지점 정도였다. 즉, 기병대가 처음 기동을 시작할 때에는 [[대열]]을 맞춰 나아가야 할 필요성도 있고 말의 체력을 보존해야 할 필요도 있었으므로 트롯과 같은 가벼운 속보로 대부분의 거리를 주파했으며, 목표물을 100m 정도 둔 지점에서부터는 캔터로 달리기 시작하여, 그리고 마지막 50m부터는 최대 '스퍼트'인 갤럽으로 질주하여 보병대에게 돌격을 개시했다. 놀랍게도 [[화살]]이나 [[총포]]가 쏟아지는데도 목표물 100m 앞 정도 까지는 조금 빠른 속보 정도로 터벅터벅 이동했다는 것. --괜히 기사들이 용감해야 했던 게 아니다-- 1119년의 브레뮬 전투를 기록한 오더릭 바이탈리스의 묘사는 엉성한 기병 대열이 단단한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프랑스군은 첫 번째 맹공격을 가했지만, 무질서하게 돌격해서 격퇴당했으며 빠르게 지쳐서 등을 돌려 도망쳤다. [[헨리 1세|왕]]의 아들인 리처드와 기사 100명은 말 위에 앉은 채 전투준비를 갖추었고, 나머지는 왕과 함께 전장에서 도보로 싸웠다. 선두에서 윌리엄 크리스핀과 (프랑스의) 기사 80명이 노르만인들을 향해 돌격했지만 그들의 말은 순식간에 살해당했고 기수들은 모두 포위당해 단절되었다. 세랑의 고드프루아와 벡생 출신의 다른 기사들은 이후 용감하게 저항했고, 적진 전체를 어느 정도 밀어붙였다. 하지만 노련한 전사들은 용기와 힘을 회복하여 Burchard, Otmund, Aubrey of Mareil, 그리고 다른 많은 낙마한 프랑스 기사들을 포로로 잡았다. [* Certainly the French launched the first fierce attack but, charging in disorder, they were beaten off and, quickly tiring, turned tail. Richard the king's son and a hundred knights were sitting on their horses ready for battle; the rest fought on foot in the field with the king. In the forefront William Crispin and eighty knights charged the Normans, but their horses were quickly killed, and they were all surrounded and cut off. Godfrey of Serrans and other knights of the Vexin then fought back valiantly, and made the whole line fall back somewhat. But the seasoned warriors re–covered their courage and strength and captured Burchard and Otmund and Aubrey of Mareil and many other French knights, who had been unhorsed.] >---- >-Orderic Vitalis, trans. Marjorie Chibnall,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Orderic Vitalis'' 기병 돌격은 [[전투]]에서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며, 이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대열을 횡으로 늘릴수록 이론상 충격력은 증가하지만, 용기와 능력이 부족한 기병들이 전방에 서는 비율도 높아지며, 조절을 잘못 할 경우 교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탈자가 발생하고 그것을 본 정예병들도 사기가 떨어져서 순식간에 대열이 와해될 수 있었다. 아니면 어떻게든 적 대열 앞에 도달은 했지만 일부는 '빠르게 지쳐서 등을 돌려 도망'치고 일부는 '포위당해 단절'되는 결말을 맞거나. 반대로 대열의 종심이 깊을수록 전방에 선 정예병의 밀도를 높일 수 있으며, 더 많은 기병들이 후열에서 돌격과 충돌의 스트레스로부터 보호받고, 용기를 얻은 후열의 지원을 통해 다시 전열의 사기가 오르는 상승효과가 발생해서 더 강하고 지속적인 힘으로 전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종종 보병대나 기병대가 밀집된 종진이나 쐐기진을 취해서 포위당하기 전에 상대 전열을 뚫어버리는 것은 이런 원리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열에 최고의 기병들(choice men)을 세운 다음, 두 번째 열에는 두 번째로 용맹한 기병들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두열에 세울 최소 25명의 정예병을 가지지 못한 기병중대는 불행한 부대(miserable companie)다 >지휘관이 선두열에 세우기에 충분히 용맹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나머지 기병들은 선두열에 세운 정예병들의, 말하자면 그림자 아래에 놓이도록 배치되는데, 그렇게 하면 이들은 선두열만이 모든 위험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반면 그들에 의해 적진이 무너진다면 자신들도 그들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선두열을 따라서 돌격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열에 선 기병들의 용기가 그들을 적진에 충돌하게 만들고, 마지막 열에 선 기병들의 확신이 그들을 뒤따라 파고들게 만든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종진으로 배치된 기병대가 돌격에 실패하는 것은 상당한 겁쟁이들이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기병대가 선형진으로 배치된다면, 비록 소수의 정예 기병들이 적진에 충돌하기 위해 힘차게 진격하더라도, 의욕이 부족한 나머지 기병들은(이들은 코에서 피가 터지고, 등자가 망가지고, 말굽에서 편자가 벗겨진 것처럼 가장한다) 옆에서 따라가지 않고 멈춰서며, 그 결과 200보도 못 가서 우리의 긴 선형진 안에 연약한 유리창들(glasse windowes)이 만들어지고, 그곳에 커다란 구멍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것을 본 적들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병 100명 중 고작 25명이 돌격에 끝까지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창으로 한 번 찌르고 검으로 한 번 공격을 가한 직후, 자신들을 지원할 병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잠깐의 교전에서 적의 공격에 쓰러지지 않는다면) 퇴각할 것이다.[* Now is it like that those whom wee set foremost are choice men, and the second doe wel second them in valour:[br]and it is a miserable companie that hath not at the least 25. good men in it.[br]As for the rest who I presuppose not to be so valiant, they be placed as it were in couert vnder the shadow of the former, which maketh them to followe the more cheerefullie to the charge, as knowing that the head must beare all the daunger and hurt, which if it breake the enimie, they shall be partakers of the same honour.[br]So that it is a notable signe of cowardlynesse, when a troupe so ordered dare not joyne. Considering that the valour of the first should vrgè them to the onset, and the assurance of the last to follow and thrust in.[br]But when a troupe is set in a wing, although the good, which ordinarily are the smallest number, do march cheerely to the onset, yet the rest that are not so willing to bite, (which faine to bleede at the nose, to haue a broken stiroppe, or to haue their horse vnshooed) doe staie behinde, so as within two hundred paces of waie, we shall see glasse windowes in that long file, & great breaches wil appeare therein, which greatly incourageth the enimie:[br]and many times among an hundred horse, scarce 25. doe enter in:[br]who afterwarde knowing themselues to haue no supporte, when they haue broken their staues and stroke one blowe with the sword, (if they be not ouerthrowen at their first comming,) do retire.] >---- >La Noue, Francois de. 1587. '[[https://quod.lib.umich.edu/e/eebo/A05074.0001.001/1:5.15?rgn=div2;view=fulltext|The politicke and militarie discourses of the Lord de la Novve. Whereunto are adioyned certaine obseruations of the same author, of things happened during the three late ciuill warres of France]]' 그러므로 헐리우드 영화의 클리셰처럼 기병대가 무질서하게 흩어진 채 질주하며 횡대든 종대든 밀집대형을 이룬 적 진형에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상대방 역시 수준이 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측 모두 똑같이 사기만 높고 기마술과 규율이 부족한 전투에서는 두 진형의 밀집대형이 풀어지면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공격을 주고 받으며 지나쳐 부대 전체가 '깍지 낀 손가락처럼' 일제히 통과해 나가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의 기병 근접전 AI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이는 서유럽 기병대의 평균적인 수준이 하락한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 사이 기병전에서 특히 자주 목격된 현상이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계기로 다시 근접 전투 훈련을 중시하게 된 18세기 후반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쯤이 돼서야 감소한다. 이런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 기병대를 마상전투로 맞상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기병들을 대부분 하마시켜서 보병 전열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때문에 북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서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사들은 도보전투를 마상전투에 못지 않게 중시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마상전투보다 더 중시했다. 북프랑스는 유독 마상전투 [[만능주의]] 성향이 강했지만 [[백년전쟁]] 초반에 잇따른 패전의 영향으로 도보전투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군대들이 서로 합류한 뒤, 프랑스인들이 옛날부터 독일인들에게 말하곤 했던 특정한 상투어가 공공연히 사용되었는데, 이는 대략 "움직여라, 독일놈아." 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설명하자면 이런 모욕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이 두 종족은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훌륭한 진형을 이룬채 말을 타고 달리거나 창으로 공격하는 데 능숙하며, 그들의 기병대는 속도에서 독일 기병대를 능가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도보전투에 더 능숙하며, 큰 검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마다, 자신들의 기병대의 능력에 의심을 가지고는 도보로 싸우기로 결정한다. >기병대의 교전이 벌어진다면, 프랑스 기병들이 규율 없는 독일 기병들을 물리친다. >독일인들이 더 자신있어하는 분야인 보병 진형에 돌격해도, 병력이 열세임에도 프랑스 기병들이 도보로 싸우는 독일 기병들을 물리친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위와 같은 표현으로 독일인들을 조롱한다. 그들이 말을 타고 싸울 수 있는데도 도보로 싸우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프랑스인들은 이 말을 계속 반복해서 독일인들을 매우 화나게 만들었다.[* When the armies united together, a certain byword which from of old used to be uttered by the French to the Germans was then openly applied, which verbally runs something like "Budge, German."[br]Whence such a thing takes its origin I will immediately reveal.[br]These nations' fashion of waging battle is not the same.[br]The French are particularly capable of riding horseback in good order and attacking with the spear, and their cavalry surpasses that of the Germans in speed.[br]The Germans, however, are able to fight on foot better than the French and excel in using the great sword.[br]So whenever the Germans campaign against the French, they feel doubtful of their cavalry and determine to wage war on foot.[br]Encountering their undisciplined cavalry, the French defeat it;[br]charging the more expert part of the Germans, they drive back those who go on foot, although they are greatly inferior to them in number;[br]they mock them with the said expression, because while it is possible to fight with horses, they choose warfare on foot.[br]As stated, this was then repeatedly applied by the French to the Germans and greatly vexed them.] >---- >Joannes Kinnamos(1143-?), trans. Charles M. Brand, ''Deeds of John and Manuel Comnenu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