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병 (문단 편집) === 단점 === 이토록 강력한 기병이지만, 많은 단점도 있다. * '''전장 환경, [[지형]] 및 기상환경에 따른 영향''' 가령 물렁한 지형에서 폭우가 쏟아질 경우 말의 다리가 논두렁 같은 곳에 빠져 나오지 못하니 살아있는 과녁으로 전락한다. 말의 다리는 [[소]]보다 연약해서, 수렁에서 억지로 빠져 나오려다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는데, 다리 하나만 부러져도 다른 세 다리에 과부하가 걸려 관절이 망가져서 매우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매체 등에서 다리 부러진 말을 치료해주지 않고 안락사시키는 이유가 이것.] [[임진왜란]] 때 맹장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기병대를 이끌었다가 패배한 이유중 하나도 전날까지 이어진 비로 전장이 진흙탕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공성전]]'''이나 '''시가전'''에서도 기병이 이점을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 공격쪽일 때 성곽때문에 말을 타고 싸울 수가 없으니 내려 싸울 수 밖에 없었다.[* 예외적인 사례겠지만 기병이 성벽을 돌파하는 경우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성벽 앞에 흙주머니를 잔뜩 던져 언덕을 만들어서 타고 올라가거나, 말이 오를 수 있는 거대한 사다리차를 만들어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http://yard.joara.com/user/yard_board_view.html?idx=70412&cate_code=3&yard_id=kimsoon2| ]]] 다만 공성전 중에서도 성곽 바깥에서 싸워야할 때에는 유용했다. 대표적으로 [[제2차 빈 공방전]] 당시에 폴란드군을 주축으로한 신성동맹의 구원군이 [[윙드 후사르]]를 앞세워 오스만군의 포위를 깨부수고 빈을 구원한 사례가 매우 유명하다. 반면 같은 전투에서 공자측이었던 오스만군은 공성전 상황에서 적절한 기병운용에 실패했다. 오스만군 산하의 크림 칸국 기병대가 인근 지역을 정찰하여 구원군의 접근을 미리 포착하고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휘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신성동맹군에게 허를 찔리고 대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 '''보병의 밀집대형''' 부피면에서 보병이 어깨를 맞대고 서면 1m 당 3~4명이 붙을 수 있지만 기병은 1명이 한계다. 때문에 충돌력으로 보병을 밀어내지 못하면, 기병 1명은 보병 4명과 동시에 대결해야했다. 또한 말은 본능적으로 뾰족한 물건에 뛰어들기를 꺼리기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장창이나 파이크로 밀집대형을 이룬 보병은 기병으로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기병 역시 이 같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카라콜]] 전술같은 것도 등장하였지만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총검]][* 정확히는 총구에 삽입하는 플러그식 총검이 아닌 장착한 상태에서도 총을 사용할 수 있는 탈부착식 총검의 등장 이후]과 [[수발식]] 소총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기병이 밀집대형을 이룬 보병대와 '''정면대결'''하는 것은 도저히 승산이 없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7년 전쟁]] 중 프랑스 왕국군과 영국 및 동맹군 간에 벌어진 1759년의 [[민덴 전투]]가 있다. 민덴 전투에서 프랑스군 중앙에 배치된 '''기병대 63개 대대[* squadron ]'''가 영국 및 하노버 '''전열보병 9개 대대'''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 아직 대기병 방진이 도입되기 전 시기라 영국 보병들은 선형 대열을 이룬 상태로 포격을 맞아내어 가며 전진했다. 이에 맞서 프랑스군 기병대는 순차적으로 3파로 나뉘어 영국보병대에 돌격을 가했다. 이때에 프랑스 기병대는 영국 보병보다 숫적으로 우세한데다가 아군 포병의 지원사격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예상과 달리 머스킷으로 무장한 영국보병들이 세차례에 이은 프랑스군 기병돌격을 모조리 분쇄했고 되려 프랑스군 기병대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즉 18세기 즈음에 이르면 기병이 수적으로 충분한 상황에서조차 보병의 밀집대형을 정면으로 돌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신, 보통 보병의 선형대열은 측면이 취약하여 기병이 보병대의 [[망치와 모루 전술|옆구리를 칠 수 있다면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보병도 대기병 사각 방진이 등장하여 이를 보완했지만, 이럴 경우 적 보병과 포병에 그만큼 취약하였다.[* 사각형 대열을 짜면 정면 화력은 ¼로 줄어드는 셈인 데다 포탄을 피하기도 어려웠기에 자칫하면 기병을 보낼 필요도 없이 포병에 의해 몰살당할 위험이 매우 컸다.] 결론적으로 보병과의 정면 대결이 어려워진 이후에도 기병은 최대 강점인 기동성을 살려 적의 취약점을 타격하고 다른 병과인 보병, 포병등과도 협동함으로써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 [[체력]] 말은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중에서 체력이 높은 동물 중 하나로, 훈련되거나 노동용으로 사육된 말은 중간중간 잘 쉰다는 전제하에 하루에 걸어서 100마일/160㎞를, 속보로는 하루에 20-40마일/32-64㎞, 쉬지 않고는 8시간을 걸어서 32마일/51.4㎞를 갈 수 있다. 그러나 전체 동물군과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 중에서 체력이 높은 축에 든다는 것이지 인간과 비교하면 열세한 부분이 있는데, 훨씬 더 광범위한 거리를 장시간 이동해야할 때는 인간이 말보다 월등하며, 더운 날을 기준으로 마라톤 풀코스인 42.195㎞ 가량을 뛸 때에는 오히려 인간이 말보다 빠른 사례도 제시되곤 한다.[* 출처 https://neeness.com/how-much-stamina-does-a-horse-have/] 그러므로 단순히 얼마간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냐가 아니라 '''얼만큼 오래 육체활동을 지속할 수 있냐'''로 비교하면, 말은 인간보다 비교열위에 있으며, 말은 체력적으로 과로를 하게 되면 심장에 부담이 가서 즉사할 수도 있다. 특히 더더욱 높은 운동량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전장에서 말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보병보다 훨씬 짧으며, 휴식도 오래 필요로 한다.[* [[경주마]]들의 경우 한번 경주를 하고 나면 10일 가량 휴식 기간을 가지고나서 다시 훈련을 시작한다.] 따라서 몽골 기병같은 경우 기수 한 명당 적어도 3마리~10마리까지 말을 대동해서 전쟁에 참가하며, 말을 갈아타며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 '''지휘 통제의 어려움''' 기병은 정밀한 기동[[지휘]] 및 돌발상황 대응이 보병에 비해 어렵다. 기병[[돌격]]을 생생하게 그려낸 [[워털루]]([[1971년]] [[영화]])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같은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단 돌격명령이 떨어져 수백~수천 기의 기병이 우르르 달려 나가기 시작하면 신호전달이 매우 어려워진다. 목소리는 커녕 [[나팔]] 소리도 듣기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우며 흙먼지 때문에 [[깃발]]신호를 눈으로 보기도 어렵기에, 한 번 시작한 돌격은 사실상 취소할 수 없었다.[* 사실 보병도 이러한 특성이 있기는 하다. 한 번 시작한 전면공격을 갑자기 취소하면 왕성하던 병사들의 사기가 자칫 한순간에 최악(아군에 무슨 큰 일이 생긴 것으로 오인→공포심이 급속도로 전염)으로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수대전]] 항목 참조. 동서고금의 병서들이 "한 번 내려진 군령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취소하지 말 것"이라는 금언을 넣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아군 기병대가 통제에 벗어나 패주하는 경우나, 적 기병을 격파하고나서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거나 약탈에 몰두하느라 전장을 이탈해버리는 경우도 왕왕있었다. 그러다보니 초반에 잘 싸우다가 기병을 통제하는데 실패하여 패배한 사례들도 많다. 전근대에 벌어진 [[브라이텐펠트 전투]], [[엣지힐 전투]], [[네이즈비 전투]] 등이 기병의 지휘통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잘 나타난 사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상술했듯이 창, 활 등의 무기가 날아오는 상황이 말들을 흥분시켰기에 말들이 이미 흥분하면 기수들이 통제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특히 적의 공격으로 인해 기수가 말 위에서 떨어져 기수가 없어진 말들은 사실상 통제할 방법도 없었다. * '''[[병참]]([[군수]])의 문제''' 기병은 '''훈련 및 양성하고 유지하는 비용(유지비)'''이 엄청나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1505515&search_head=70&page=1|#]] 기병은 기수인 인간 뿐 아니라 동물인 군마가 필수적이다. 군마는 가장 좋은 말을 골라 쓰는데다 이를 사육해서 훈련시키고 먹이는 비용이 장난 아니었다. 말 한마리가 하루에 먹는 량은 아무일도 안할 때 15,000칼로리, 중간강도의 노동을 할 때 25,000, 고강도 운동을 할 때는 33,000칼로리로[[http://www.dayvillesupply.com/hay-and-horse-feed/calorie-needs.html|링크]] '''성인 남성보다 최소 6~13배는 먹는다.''' 부피를 덜 차지하는 [[귀리]]나 감자를 건초와 섞어 규격화한 덩어리가 사료로 사용되었으나 이마저도 먹는량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전에는 부피가 큰 마초를 먹여야 해서 수송조차 어려웠다. 수백~수천 마리의 마필이 먹을만큼 풀이 넉넉한 곳은 오로지 초지가 끝도 없이 수십~수백만 ㎢ 단위로 펼쳐진 비옥한 초원지대뿐이었다. 길가에 난 아무 풀이나 마구잡이로 먹이면 양부터 턱없이 모자라거니와 배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말은 [[물]]도 많이 마시기에 식수 보급도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된다. 가령 사람의 일일 수분섭취량이 총 2.5리터고, 음식물로 섭취된 량을 제외하면 보통 1.3리터의 물을 필요로한다. 그런데 말은 사람과 신진대사가 달라 하루에 5 ~ 10갤런 즉 18.9리터에서 37.85리터의 엄청난 양의 물을 별도로 섭취해줘야한다.[[https://extension.psu.edu/how-much-drinking-water-does-your-horse-need#:~:text=in%20a%20day%3F-,The%20average%20horse%20will%20intake%205%20to%2010%20gallons%20of,to%203%20or%206%20days.|링크]] '''말 한필이 14~28인분의 식수를 먹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기병의 작전과 행군은 식수를 획득하기 용이한 곳으로 제한을 받는다. 이는 기병의 기동경로와 공격지향점을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였다. 이 밖에도 군마 운용에는 전문인력들이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수의사]]나 [[편자|편자공]]이 필요하고 따라서 보급체계도 복잡해진다. 지원인력이 충분하지 않는다면 군마 손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곤했다. 이는 아래에서 후술할 군마 보충과 양성이 어렵다는 점과 맞물려 [[총체적 난국|군마 부족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곤했다.]] 결론적으로 기병, 특히 군마를 전투가능 상태로 유지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가령 흉노와의 전쟁을 위해 30만 명의 기병을 유지했던 [[전한|한나라]]의 경우 '''평시에 식량을 포함한 기병1기의 유지 비용은 보병의 8.7배에 달했고,''' 이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은 1년 총 세익의 2.18배에 달하였다.[* A cavalryman on average cost 87,000 cash, not including rations, while a regular soldier only 10,000 cash. The total expenditure of a 300,000 strong cavalry force would therefore have been around 2.18 times the entire government's annual revenue. [[https://en.wikipedia.org/wiki/Military_of_the_Han_dynasty|위키피디아]], Chang, Chun-shu (2007),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1,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 [[https://cafe.naver.com/booheong/185008|창춘슈 교수의 원책 내용]]에 의하면 식량과 사료값 의복비를 다 포함한 비용이 8.7배에 달한다고 서술하고 있으므로 위키피디아에 나온 내용은 오독으로 보인다.] 기병의 재정을 연구한 창춘수 교수에 의하면, 전시에는 감가삼각이나 소모품 비용이 급증하므로 유지비는 평시의 저것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있다. * '''군마 양성 및 획득의 어려움''' 말은 [[군마]]로 쓰기 위해서 최소 3년 정도는 집단 훈련과 빠른 걸음, 구보 및 사람과 친해지는 것을 가르쳐야 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야 했다.[* 가령 메이지유신 때 일본은 외국으로부터 전투용 2살 망아지를 사들여 3년간의 훈련을 시켜서 기병부대에 배속한 후 1-2년의 훈련을 추가로 거쳤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훈련을 거듭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말을 예비마까지 포함해 몇 필이나 거느려야 하는 것이 기병. 그래서 [[유목]]민처럼 [[유목|목축]]이나 [[수렵]] 따위의 생업(生業)을 목적으로 사람과 말이 함께 자연스럽게 단련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위적으로 기병이라는 병종을 편성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훈련받은 군마를 획득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20세기 중반이후 기병이 도태되는 시점까지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까다로운 문제였다. 즉 기병을 일단 한번 대량손실한다면 말을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으니 '''단시간 내에 재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훈련을 받은 군마들도 전장의 가혹한 환경, 특히 포위전시에는 대량으로 죽어나갔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