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병 (문단 편집) ==== [[경기병]] ==== || [[파일:e0079724_4c7cfd94a1778.jpg|width=100%]] || ||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호복]]기사. 당시 마종의 크기를 고려하여 작게 그렸다. || 고대의 전장에서 기병이 처음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활]]을 사용하는 [[궁기병]]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활을 든 기병대가 제일 먼저 등장하였으며 일찍이 [[아시리아]] 제국에서도 주요 병과로 취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목민족들의 기병대에 착안하여 등장한 [[조무령왕|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오랑캐 옷을 갖춘 기마무사)들 역시 [[활]]을 쏘는 경기병이었다. [[궁기병]]은 서쪽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스텝(지리)|스텝]] 지대로부터 동쪽으로는 [[만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목민들의 주력 병종이었다. 유목민들에게는 목축과 수렵이 생계수단이었기에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경기병이 육성되었고, 광활한 초원에서 활은 필수품이었기에 양다리만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양손으로 활을 쏘았다고 한다.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스스로를 '활의 백성'이라 자처했으며 [[중국]]의 문헌에도 이들을 '장성 이북 궁술의 나라'라고 일컫는 표현들이 보인다. 궁기병들이 모이면, 칼이나 창 등의 냉병기를 든 보병은 그저 과녁일 뿐이고 같은 기병조차도 대응이 힘들었다. 똑같이 원거리 무기를 갖추지 않았으면 이들의 화살공격에 맞설 수 없었고, 무장이 가벼워 빠른 탓에 말을 타고도 이들을 추격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러한 궁기병을 많이 보유한 유목민족들은 정주민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들이었다. || [[파일:Parthian_Shot.gif|width=100%]] || || 파르티아의 궁기병 || 이 활을 든 경기병들은 다른 병과들처럼 한번에 모여서 뭉친 다음 적과 교전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여러 뭉텅이로 쪼개어 적을 에워싼 뒤 벌레떼(swarm)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공격하다가 우르르 빠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반복되는 화살 공격에 적들이 손실을 견디지 못해 전투의지를 상실하거나, 대오가 무너질 때 중기병 등을 이용한 돌격을 겸하여 적을 무너뜨리기도 했는데 [[카르헤 전투]]가 대표적이다.[* 물론 카르헤 전투 당시 로마 보병들이 막 모집된 신병들임을 감안해야한다. 로마 중보병들은 통념과 다르게 성능 좋은 방패 덕분에 훈련만 잘 돼있다면 화살 공격에 강한 저항력을 보여주었다. [[니시비스 전투]] 등 많은 예가 이를 증명한다.] 다만 근접전에서는 불리하였고 마상사격이 일반 사격에 비해 어렵고 사거리가 짧아서, 보병들이 전투력을 온존하고 있다가 역습, 경기병들에게 근접전을 강요함으로써 패배시키거나, 보병의 화망에 압도당해 경기병이 패배한 경우도 많았다. 보통 보병은 사거리가 더욱 길고 관통력 운동에너지가 모두 큰 롱보우/장궁을 사용한 반면 경기병은 말위에서 사용할 때 덜 거치적거리는 숏보우/단궁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례로는 중국 전국시대 때에 조나라 [[이목]]이 흉노군을 유인, 백병전을 펼쳐 흉노군 10만 명을 몰살한 적이 있었고, 한나라의 흉노 원정에서는 [[곽거병]]이나 이감이 기병대로 돌격하여 백병전으로 이들을 제압한 이력이 있었다. [[이릉]]은 비록 패배했지만, 보병이 주력이었던 병력 5천으로 기병이 주력이었던 흉노군과 맞붙어 수레와 방진을 이용하여 며칠을 버티며 비록 부대는 거의 궤멸되었지만 흉노도 8만 명이 넘는 병력중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삼국시대]] 때는 원소군의 [[국의]]가 활을 쏘며 전진해오는 [[공손찬]]의 백마의종 기병부대를 방진과 [[쇠뇌]]를 이용하여 격퇴한 바 있고, 위나라의 [[전예]]가 [[조창]]과 함께 수송용 수레를 원형으로 빙 둘러 장애물을 삼아 원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쇠뇌]]를 쏘면서 오환의 기병대를 격퇴한 바 있다. 드물게도 정주민족이 기병을 양성하여 유목민족의 기병을 상대한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나라의 흉노 원정은 고대 세계 최강의 유목제국이었던 흉노와 정주 제국이던 한나라가 [[스텝|초원지대]]에서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기병을 동원해 정면 승부를 벌인 패권전쟁이다. [[기원전]] 119년의 [[막북전투]]에서 한나라는 10만의 기병을 동원하였는데 정확한 숫자는 불명이나 흉노도 그만한 기병을 동원하였다고 하면 적어도 '''20만'''에 달하는 기병이 격돌한 전투인 셈이다. 또한 로마에서는 트라야누스 집권기에 기병과 궁병을 대규모로 육성하여 파르티아 원정을 펼치어 유목민족 기병대를 제압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