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병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1차 세계대전때보다도 기술이 더 발달한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기병들은 계속 쓰였으며 특히 [[폴란드]]의 [[창기병대]]와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대가 크게 알려졌다. 전간기에는 신생 폴란드 공화국의 창기병대와 소련 적군 카자크 기병대 간의 기병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폴란드 창기병대는 창 들고 전차에 꼬라박은 뒤 전차가 나무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나, 이건 사실 용맹히 싸웠던 폴란드군을 바보로 선전하기 위한 이탈리아 왕국과 나치 독일, 헝가리 왕국과 같은 추축국의 프로파간다였던 것을 폴란드가 공산화된 뒤 세계대전 중 공산국가들의 기여를 격하하고 싶던 영국과 미국이 받아서 퍼뜨린 것이다. 실제 폴란드 기병대는 독일군 보병의 포위망을 돌파하려다가 전차부대와 충돌, 끝까지 저항하다가 몰살당한 사례이며 이 장면을 찍어다 프로파간다용으로 쓴 게 퍼진 것이다. 이 시대의 폴란드 창기병은 말이 창기병이지 기관총도 가지고 있었고,[* 사실 전술했다시피 1차대전기에도 기병대가 기관총이나 소구경 화포를 보유한 경우는 흔했다. 폴란드 창기병과 그들의 돌격이 워낙 유명한 탓에 새삼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전원 개인 화기로 무장한, 말로 이동하는 정예 보병에 가까웠고 말의 역할도 이전 시대같은 충격 [[전차]]보다는 [[전역차륜차량|고기동차량]]에 더 가까웠다. 연대 규모로 가면 대전차포와 대공포, 부속 기갑중대까지 붙은 세계대전 기준으로는 매우 현대화된 부대였으나 "창기병"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도록 기병창과 기병도 역시 지급하고 훈련도 했으며, 실제로 창기병 돌격으로 독일군 보병중대를 격파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전멸한 사례 중 일부는 [[여긴 내게 맡기고 뒤로|퇴각 중인 후방부대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싸우다 전멸했다고 한다.]] 폴란드 기병대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년 전에 일어난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소비에트 러시아군을 분쇄한 활약으로 세계에 '''막강한 폴란드군'''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독소전쟁]] 개전 이후로 동부전선에선 나치 독일에 포섭된 카자크 기병들이 활약했지만, 소련 육군 역시 카자크족을 징집해 추격전이나 게릴라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소련 육군은 여기에 1개 기병군단과 1개 기계화군단을 조합하여 임시편제한 기병-기계화 집단으로 전차나 차량화, 기계화소총제대가 기동하기 힘든 지형에 투입하거나 일반적인 전차부대보다 더 빠른 기동력을 발휘하게 하여 추격과 포위 기동에 활약하게 했다. 후방과 퇴로를 차단한 소련군 기병대는 독일군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전쟁 막바지에는 [[카자크]]들이 도망치는 독일군들의 '''목을 수확하고 다녔다고 한다'''. 1944년에 벌어진 소련군의 기병돌격을 보면, 당시 기병전술의 양상과 효과 및 활약을 볼 수 있다. [[https://m.blog.naver.com/sk7635/221658160545|#]] 해당 글에서 현대 전장에서의 기병은 하마 보병으로서 싸웠고 합리적인 전술적 테두리 안에서 운용되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기 드문 전근대적인 기병돌격이 행해지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병사들에게 추격하는 기병의 위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투를 경험하고 훈련된 군마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나와있다. [[독일 국방군|독일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6개 기병 사단을 운용했으며, 대부분 동부전선에서 운용했고 일부 발칸 반도에서 사용한 기록도 있다. 대부분 후방의 [[빨치산]]에 대응하기 위한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과 함께 기병을 편성해 운용했다. 또, [[적백내전]] 당시 백군파에 속했던 [[카자크]]를 모집해 2개 카자크 사단을 창설하였고, 이들 중 일부는 서부전선에도 참전한바 있다. 무장친위대는 치안유지와 후방 게릴라 소탕을 위해 여러 기병부대를 유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무장친위대]]의 제8 SS 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가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일화가 있는데, 미 육군으로 입대한 어느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병사([[https://en.wikipedia.org/wiki/Joe_Medicine_Crow|Joe Medicine Crow]])는 [[워치프]]가 되기 위한 과업 중 2가지, 아군을 전쟁으로 이끌고 적의 말을 훔치는 것을 휘하 부대를 이끌고 SS의 말 50필을 훔침으로써 달성한 바 있다. 기병이 아니라 군마의 경우, 독일군의 차량화와 기계화 비율은 대단히 낮은 편[* [[전격전의 전설]]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군의 월간 차량 생산량으로는 비전투손실의 2%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저조하여 10개의 기갑사단과 6개의 차량화보병사단에게 보유한 차량 대부분을 집중 배치했을 정도였다.]으로 전쟁 기간동안 엄청난 숫자의 말을 징발했다. 1939년 개전 당시에 59만 마리, 1945년 1월에는 120만 마리에 이를 돌보는 인원만 수만명이었다. 중간에 죽거나 다친 말까지 포함하면 유럽 전역에서 최대 700만 마리의 말을 징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독일군은 고질적인 석유 부족으로 최일선의 전차부대를 제외하면 말을 굴려야 했다. 이 말들은 수송부대나 포병대, 지원장비 등을 견인하는데 사용되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수송용으로 말이 사용된 것에 가깝지 이것을 본격적인 기병대를 굴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 독일군처럼 부족한 기계화 탓에 똑같이 말을 많이 사용했던 일본군의 경우 대포를 말로 끄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말들은 포병대 소속이었지 기병대 소속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왕국군]] 역시 기병대가 존재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독소전에 파견된 육군 사보이아 기병연대의 기병돌격. 1942년 8월 24일에 있었던 일로 '''포병 지원까지 받던 소련 육군 시베리아 보병연대를 기병 돌격으로 박살내버렸다.''' 졸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이지만 이런 분전도 많았다. 그리고 실질적인 기병대가 투입된 마지막 전투는 후술된 후베이성 전투지만, 그 기병대로 성공적인 돌격을 달성한 것은 사보이아 연대의 기병돌격이 현재 역사상으론 마지막이다. [[일본 제국 육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 기병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에는 좋은 말이 드물어 근대 이전에도 기병을 대규모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1차대전 직후인 1919년 기병폐지론이 강하게 일어나서 이를 주장한 쿠니시 고시치 육군 소장과 이를 반대하는 제4기병여단장인 요시하시 토쿠사부로 육군 소장 간에 격론이 벌어졌는데, 요시하시 장군의 자살과 함께 기병 폐지론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0년대부터 보병사단에 소속된 기병연대를 먼저 기병정찰대대로 축소한 다음 차츰차츰 폐지했다. 중국 전선에서는 여전히 기병을 사용하여 [[중일전쟁]]에서는 4개 기병여단을 유지했지만, 1940년 기병 1여단이 차량화되었고, 1941년 기병2여단이 해체, 1945년에 초에 기병3여단이 해체되어 패전 당시까지 보유한 기병대는 기병4여단 하나뿐이었다. 1945년 6월 중국 [[후베이 성]] 라오허커우시에서 비행장을 확보하려는 중국군과 일본군의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 전투에 일본 제국 육군 기병4여단이 참전하여 여단 이상급 대단위 기병대가 전투를 벌인 마지막 전투라고 한다. [[몽골군]] 역시 2차대전 시기에 기병대가 존재했고, [[할힌골 전투]]에서 활약 했다. 2차대전 당시 자력으로 전군의 기계화를 이뤄낸 군대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미군]]이다. 말과 마초를 저 멀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수송하는 것보다 차량을 수송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소련군]] 또한 [[쿠르스크 전투]] 이후부터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엄청난 물량의 전차를 찍어내]] 군의 기계화에 성공한다. 다만 미군도 완전한 기계화까지는 이루지 못한 것이 미군은 기병대를 전간기에 이미 대부분 폐지하거나 차량화 하였으나 제2차대전 까지도 소수의 기병대가 운용되고 있었으며 1942년 1월 16일 필리핀 바탄 반도 방어전을 수행하던 제26기병연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미국 역사상 최후의 마상 돌격을 시행해 수적 우세를 점하던 일본군을 격퇴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1차대전기까지는 세간의 인식보다는 훨씬 많이, 2차대전기에는 많이 제한되긴 했지만 약간이나마 정찰, 기동력을 살린 침투, 충격력을 살린 돌격 등의 기병의 '전통적인 역할' 이 쓰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전간기부터 이미 자동차나 오토바이, 기갑장비, 항공기 등 기병의 기동력과 충격력을 쌈싸먹는 병기들이 대거 개발되고 일선에 보급된 탓에 기병의 역할이 확 줄어들었고, 2차대전이 터지자 전간기의 병기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으로 병기들이 발전하면서 사실상 다른 병과들이 기병의 역할을 대부분 빼앗아 갔다. 이 때문에 1차대전 이후로 기병은 가면 갈수록 비중이 줄어들었고, 2차대전이 끝난 이후로는 사실상 사장되다시피 했던 것. 그러더니 1950년에 벌어진 6.25 전쟁을 마지막으로 기병대는 모두 전장에서 퇴장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중국이나 몽골이 차량을 운용하기 힘든 험지 지역에서 기병을 운용중이며 로디지아 분쟁, 미국-아프간 전쟁 등에서도 기병이 활약했기에 완전한 퇴장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