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병 (문단 편집) ==== 경기병 ==== 고대부터 최초의 기병은 경기병[* 투창 기병이나 투석 기병 궁기병]이었고, 활약의 내용은 고대나 중세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보통 경기병이 자주 맡은 역할은 정찰 및 적진 교란과 전투 종반에 후퇴하는 적의 추격이었다. 14세기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에서 chevauchee라는 기마 약탈 전략을 운용했는데 경기병의 기동성을 활용해 프랑스 영토들을 초토화하고 약탈하는 전략을 운용했다. 다만 약탈하는 과정에서 하마하는 경우도 있었을테니 관점에 따라 승마보병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잉글랜드만 썼던 전략은 아니었으나 유독 잉글랜드가 자주 사용했다. 푸아티에 전투에서 화살을 소진한 장궁병들 중 일부가 즉흥적으로 기병으로 합류하기도 했는데 잉글랜드가 저런 기마 약탈 전략을 상당히 자주 썼던만큼 충분히 가능했을 수 있다. 활을든 궁기병은 중세에도 활약이 두드러졌다. 12세기 초반에는 경무장한 금나라 기병 17명이 자기들을 쫓아오는 2,000여 명의 북송 보병대를 활만 쏘아 일방적으로 유린하여 궤멸시키기도 했고,[* 폴 J. 스미스, 《천부(天府)에 과세를 해서》, 하버드대학 출판국, 1992] 금나라의 기병 편제는 항상 중기병과 경기병이 한 부대로 편성되어, 같이 돌격하면서 화살을 쏴주면서 엄호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이 경우 충돌 전에 먼저 적의 숫자와 기세를 꺾어둘 수 있어 중기병의 돌파가 쉬워졌다. 게다가 전투의 종반에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여 전력을 가장 확실하게 줄이는 데에 경기병만큼 좋은 병과도 없었다. 몽골 제국의 경기병은 두 종류의 합성궁과 세 종류의 화살을 사용했는데, 활의 사용은 단순한 엄호, 견제를 넘어서 적의 대열을 와해시키고 타격을 주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중기병도 다수 존재했으나 역시 동시대의 기병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경장이고, 전투의 주력은 주로 활을 든 경기병이 담당하였다. || [[파일:attachment/Mongol_Light_Carvaly.jpg|width=100%]] || || [[키예프 루스]]군 중보병을 쏘아죽인 몽골 경기병 || 유목민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나라들에서 유독 활을 이용한 경기병을 많이 운용하였는데, 예컨대 유럽의 [[헝가리]]나 [[중동]]의 여러 이란계, 튀르크계 제국들이나 [[중국]]이 많은 경기병을 운용했다. 그 중에서 [[사산 왕조]]나 [[맘루크]]에서는 중무장한 기병이 활을 쏘며 돌격하는 전술로 유명했다. [[조선]]은 정책적으로 궁기병을 집중적으로 운용하였고, [[일본]]의 초기 [[사무라이]]들 또한 마상궁술을 중시 여겼다. 또한 카우치드 랜스가 발달하기 전 일부 서유럽 기사들도 마상궁술을 사용하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