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리시마(순양전함) (문단 편집) == [[과달카날 해전]]에서의 격침 == [[1942년]] 11월, [[솔로몬 제도]] 해역에서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전함)|워싱턴]]의 포격으로 격침당한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면, 당시 기리시마는 야간에 해안 포격[* 그전에 공고와 하루나가 과달카날 섬의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포격해 성과를 거둔후 다시 히에이와 기리시마를 보낸 것인데 미해군 순양함들에 의해 자매함 히에이가 대파되어 포기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리시마가 다시 접근하다가 아예 전함 사우스다코타, 워싱턴을 주축으로 한 함대와 맞닥뜨린 것이다.]을 위해서 접근 중, 도중에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전함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하고 철갑탄인 1식탄과 해안포격에 쓰려던 [[3식탄]]을 냅다 쏴버렸다. 사우스다코타는 이 해전에서 사소한 수리를 하던 수리반의 실수로 인해[* 고참병이 독단으로 규정을 어기고 전기 차단기를 내려버려서 이후에 걸린 전류 과부하를 막지 못하고 함선 전체의 전기가 나가버렸다.] 전기계통이 손상을 입어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방어력과 운이 함께 작용해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이 되어 피해를 거의 주지 못했고,[* 사우스다코타의 상부구조물은 많이 손상되었으나 선체 손상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어서 함이 떠있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결국 자력으로 귀항하여 수리를 받았으나 상부구조물 손상으로 꽤 장기간 입거하게 되었다.][* 명중률이 큰 문제였는데 기리시마가 쏜 철갑탄 중 단 한 발만이 사우스다코타에 명중했다. 만약 이 포탄이 현측장갑에 명중했다면 충분히 현측장갑을 뚫었겠지만 명중한 부위가 다른 곳보다 장갑두께가 훨씬 두꺼운 바벳이었던지라, 포탄이 관통을 못 하고 폭발했다.] 사우스 다코타가 다굴당하는 동안 무사했던 워싱턴이 조용히 기리시마의 뒤로 돌아가 16인치 함포 9문의 일제사로[* 엄밀히 일제사라기보다 준비가 되는 대로 쏘기 시작했으며 초탄부터 협차를 얻었고 3번째 사격으로 명중탄을 냈다. 워싱턴의 수병들은 숙련도가 높아 교범상 30초당 1발 장전인 16인치 주포탄 장전을 '''14초'''로 끊었다고 한다. 그 결과 '''7분간 75발을 쏟아부어''' 기리시마를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기리시마를 [[역관광]]보내버린다.[* 사실 워싱턴이 기리시마를 근접해서 두들긴 것은 이미 워싱턴이 레이더로 기리시마를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착한 전함이 기리시마인지 사우스 다코타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레이더 배치에는 문제가 있어서 오른쪽 후방 80도 정도는 잡아내지 못했다. 때마침 사우스 다코타가 거기에 들어간데다 사우스다코타의 전기계통이 맛이 간 바람에 교신도 먹통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해군은 레이더를 믿지않았던 터라 야간 사격시 조명탄이나 탐조등을 켜서 상대를 비추며 사격을 가했는데 확인을 위해 접근한 워싱턴이 기리시마의 탐조등에 비춰진 전함이 사우스다코다라는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쏘고있는 전함이 기리시마임을 확인하고 주포를 근접 사격한 것이다.] 기리시마는 3, 4번 포탑이 무력화 되었으며 조타계통이 피격당해 조함도 불가능해졌고 수선하에는 파공까지 뚫려 침수가 진행되었다.[* 견인을 시도했으나 파공으로 물이 더 차올라 기관실마저 침수되자 포기하게 되었다.] 함장 이와부치 대좌는 결국 퇴함 명령을 내렸다.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해전의 주역이 바뀐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끼리의 포격전으로 격침당한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리고 이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구축함]] [[사미다레(구축함)|사미다레]]가 구출해서 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