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동사변 (문단 편집) === 자치정부 수립 음모 === 11월 12일 [[도이하라 겐지]]가 베이핑으로 와서 쑹저위안에게 11월 20일까지 화북5성 자치정부 수립에 동의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일본이 무력으로 화북과 산동을 침략할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관동군이 산해관과 호북구에서 전차, 중포를 앞세워 무력시위를 벌이고 뤼순, 칭다오에서 순양함, 구축함과 전투기들이 파견되어 베이핑을 위협했다. 하지만 쑹저위안은 일본의 협박을 묵살하고 11월 19일 오후 1시 베이핑을 떠나 톈진에 은거해버렸다. 이에 도이하라는 쑹저위안을 쫓아가 동의를 얻어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일본의 협박은 다행히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한편 일본군은 산동성의 [[한푸쥐]], 하북성 주석 상진 등에게도 강제로 동의를 얻어내려 했으나 한푸쥐는 거부했고 상진도 바오딩의 병원으로 칭병하고 드러누워 도이하라를 피해버렸다. 11월 19일 장제스가 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대외 관계 보고'를 실시했다. >"국제 간의 사건은 우리 국가의 생존과 부흥의 길을 끊어놓는 게 아닌 한, 국가와 민족의 전체적인 이해를 위하여 일체의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 최대한의 인내를 계속 견지하고, 또한 주권이 침해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 우방과의 정치적 협력을 꾀하여야 한다.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각 우방과의 경제협력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 화평이 아직 절망의 단계에 이르지 않았으매 결코 화평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희생이 아직 최후의 관두에 이르지 않았으매 결코 가벼이 희생을 운위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평에도 한도가 있다. 최후에는 희생을 치를 각오를 가지고 하평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자." 도이하라는 톈진에서 쑹저위안을 찾아가 근성있게 동의를 요구했고 나카이가 바오딩의 병원에 누워있는 상진을 찾아가 쑹저위안과 한푸쥐는 이미 동의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어르고 위협하길 반복했지만 쑹저위안도 상진도 완고히 저항했다. 이때 화북에서는 쑹저위안이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져 학생들이 통곡하며 구국투쟁을 전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