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독교 (문단 편집) == 역사적 의의 == 21세기 들어 [[반기독교]]적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기독교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각종 전쟁과 악습, 미신의 원인으로만 작용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중세와 대비되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근대를 강조하기 위해서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역사관에 가깝다. 중세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 중세가 마냥 '암흑시대'가 아니었음은 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사항이다. 나아가 르네상스가 그렇게 혁명적으로 진일보한 시기였는가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많다. 나아가 로마 제국의 멸망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기독교로 지목한 [[에드워드 기번]] 등의 근대 역사가의 서술도 이에 한몫했다. 이런 오해에는 서로마의 멸망으로 향하는 쇠퇴가 기독교 군주인 [[테오도시우스 1세]]의 내전 승리 직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즉 여러 우발적인 사태가 서로마의 기독교 국교화와 거의 동시에 일어나다 보니,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귀납적 오류#s-5.2|마치 기독교가 서로마를 지배하자 서로마가 쇠퇴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 것.]] 그러나 중세기가 단순히 쇠퇴하는 시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기독교가 새로이 소개하고 발달시킨 개념은 결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의 기틀이 될 수 있었던 자료들은 아랍어권의 고대 그리스의 번역서적이지만, 이를 중동권에서 수입해 다시 번역한 것은 바로 당대의 지식인층이었던 중세 [[수도회]]였다. 현대의 대학 시스템의 시초가 되는 대학들 역시도 기독교적 전통 아래에서 설립되고 유지되었다. 또한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의 지역종교였고 그랬기에 유대인들만을 우위로 두는 유대교의 교리를 수정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을 소개한 것도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가 처음 동아시아권에 소개되었을 때에 동아시아의 백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지배층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온 것도 그러한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단순히 일방적으로 기독교 (나아가서 종교가) 인류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기독교 (혹은 종교)에 대한 반감에 따른 [[반신론]]적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