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지곡 (문단 편집) == 한국 금지곡의 역사 == [youtube(T_Y8HgtNC6E)] [[파일:금지곡사유.png|width=400]] '금지곡'은 한국 역사에서 대중가요가 처음으로 등장한 1920년대부터 있었다. [[아리랑]],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 등 민족감정을 고취하는 노래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지곡 1호'가 되었다. 1945년 [[8.15 광복]] 후 분단 정부의 수립과 함께 월북 음악인들의 곡은 무조건 금지곡이 되었으며 1967년에 '음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사전 심의가 법제화되어 금지곡을 지정할 길을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를 조금이라도 풍자하거나 비방한다는 '혐의'가 있으면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금지곡' 딱지를 붙였다. 이런 악습은 사전 심의가 위헌 판정을 받은 1996년까지 이어졌다. 금지곡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상흔을 남긴 시기는 유신시기다. 1975년 6월 5일 문화공보부가 '공연활동 정화대책'을 발표한 후 21일에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의를 거쳐 1차로 43곡을 금지곡으로 발표한 데 이어 추가 심사를 거쳐 같은 해 동안 모두 223곡을 금지곡으로 발표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금지곡으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심지어 [[김추자]]는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 하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패티 김]]의 '무정한 배', [[신중현]]의 '[[미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기러기 아빠', [[배호]]의 '영시의 이별',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김' 등을 들 수 있다. 당시 유행하던 웬만한 곡들은 모두 금지곡에 포함되었다. 외국 가요 역시 [[밥 딜런]], 비틀즈, 퀸 등 일부 곡들도 금지곡에 올랐다. 이들의 음반들은 경찰 등 관계당국에 의해 음반점에서 수거되어 폐기처분됐고 방송국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맘마미아]] 넘버로 유명한 [[ABBA]]의 Money, Money, Money도 '''[[배금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군부독재 시기에 금지곡 크리를 먹었다. 주된 이유는 왜색풍, 창법 저속, 불신 풍조 조장, 퇴폐성 등이었다. 하지만 당국이 들이대는 금지곡의 잣대는 타당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웃기게도 1970~80년대 최고의 민중가요로 알려진 '아침 이슬'은 1973년에 [[건전가요]]로 선정될 정도로 발표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란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 '붉은 태양'이 북한의 지도자를 나타낸 것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금지곡이 되었다. '거짓말이야'는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울음도 거짓말"이라는 가사가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빗댄 것으로 비춰졌고 '기러기 아빠'는 "아빠가 [[베트남 전쟁|월남 파병 용사]]로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빗댔다."는 이유로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미인'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를 운동권에서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라고 개사해 유신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로 부르면서 금지곡이 되었다. 그 중에는 매우 졸렬한 이유로 금지곡이 된 노래도 있었는데 바로 '키다리 미스터 김'이다. [[박정희]]의 키가 165cm로 매우 단신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키 작음을 빗댔다"는 이유로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사상이나 정치색과는 일절 상관없이 이 노래가 박정희를 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노래 금지 기준은 당국 지들 마음대로라고 봐도 될듯 싶다.-- 이 금지곡 양산과 더불어 뒤이은 [[대마초]] 파동과 함께 '1975년 가요대학살'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록, 포크송은 큰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대신 진부한 감상주의적 트로트만 주류로 거듭났다. 그나마 '가요대학살'의 화를 피한 몇몇 세션맨들이 간신히 살아남았고 젊은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 덕분에 훗날 대학가 그룹사운드의 등장과 각종 가요제의 개최, [[산울림]]의 등장 등으로 한국 록 음악은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기는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헤비메탈, 블루스, 퓨전재즈 등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각광을 받아 암흑기를 벗어나기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현재도 한국 록 음악은 여전히 유신시대 이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을 계기로 민주화의 바람이 불자 동년 8월 7일에 문화공보부가 '가요금지곡 해금지침'에 따라 국내 전체 금지곡 382곡 중 월북 작가들의 88곡을 뺀 294곡을 재심의해 186곡을 해금시켰고 1988년 10월에 납/월북 음악가 63명의 작품들도 해금시켰다. 1990년 및 1993년에 터진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및 <'92 장마, 종로에서> 사건으로 음반 사전심의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1996년에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사전심의가 폐지/위헌 판정된 후 사후심의로 전환됐다. 이렇게 정부 주도의 금지곡 지정이 점차 사라진 대신, 방송사에 의한 자체 금지곡 지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훗날 [[신해철]]은 유신시대를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수준이 (특히 록 음악에서) 큰 차이로 벌어지게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대부터는 아이돌 음악이나 발라드, 힙합 등의 장르는 양국이 수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한국이 훨씬 더 넘어선 부분도 있다고 보는데 반해[* 아이돌 음악의 경우 [[K-POP]]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이미 한일 양국간을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한국이 질적, 양적 모두 상당히 앞서 있으며 힙합의 경우에도 음악성 부분에선 전반적으로 엇비슷한 편이지만 의도치 않게 한류 열풍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유튜브]] 등으로 [[쇼미더머니]]나 [[음원]]의 파급이 이뤄져서 인지도 면에서만큼은 한국이 꽤나 앞서 있다.] 록 분야는 J-Rock이 한국의 록 음악과 비교하여 아직도 까마득히 앞서 있다고 보는 게 주된 평이다.[* 일본은 아예 록 음악이 대중음악계 주류나 다름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당장 역대 음반판매량 순위만 보더라도 최상위권에 록 뮤지션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별히 록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타 장르의 가요나 [[BGM]]에서 일렉기타 사운드나 록적인 드럼 요소가 빠지지 않고 흔하게 들릴 정도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오히려 일본은 [[R&B]]를 비롯한 흑인 음악을 대중들이 받아들인 시점이 비교적 늦은 편이라 한국과는 반대로 흑인 음악 장르의 활성화가 더딘 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록 음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를 1960~90년대의 금지곡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락덕후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명한 소설인 [[상실의 시대]]는 원제가 "노르웨이산 목재 가구"였지만 소설의 모티브가 된 [[비틀즈]]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가 금지곡이 되면서 결국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제목으로 바꿔야 했다. 또 다른 유명한 사례로는 [[퀸(밴드)|퀸]]이 있는데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84년에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방한하여 잠실 체육관을 둘러보며 내한 공연을 계획하던 도중 [[Bohemian Rhapsody]]와 [[Killer Queen]] 등 수많은 명곡들이 금지곡이라 공연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자 ''''그럼 내한 공연때 도대체 우리가 뭘 공연해야 하냐?''''면서 내한 공연을 취소하고 [[런던]]으로 돌아간 씁쓸한 일이 있었다. 금지곡을 어떻게든 듣겠다는 일부 팬들은 서울 [[세운상가]] 등지의 으슥한 곳에서 [[빽판]]을 사서 듣는 근성을 보여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