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식 (문단 편집) === [[개신교]] === '''개신교의 경우 금식, 금육 관습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자의 의무로 규정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취리히]]의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소시지 사건'(사순절에 소시지를 먹은 사람에 대한 처벌 논란)이다. [[장로교]], [[침례교]]에서는 __성경적 근거가 없는, 가톨릭적 [[인습]]이라 하여__ 금육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배척한다 (마15:3,11; 눅11:46; 롬3:20; '''딤전4:3'''[* 사제독신제에 반대하는 근거로도 인용된다.]). 다만, [[성공회]], [[루터교회]] 등 일부에서는 교회의 전통으로서 금육을 하는 신자들이 있긴 하지만 가톨릭ㆍ정교회처럼 교리상 반드시 해야 하는 규칙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대개는 가톨릭처럼 매주 금요일에 금육을 하는 것보다는 예수의 수난을 기리며 상징적으로 성 금요일에 금육, 금식을 하는 정도다. '''교리상 의무로 규정하지 않으므로 금식, 금육을 어겼다고 해서 회개하라고 권면하지 않는다.''' 금육재가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관습이다보니 개신교의 [[이신칭의]], 오직성경 교리상 이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회도 가톨릭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초창기에는 금육 규정을 엄격하게 지켰다. 가령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만 해도 금육을 어기는 사람은 무거운 벌금을 물리는것이 국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이는 금요일을 fish day라 칭하는 관습과 [[피시 앤드 칩스]]라는 요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성공회는 복음주의,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금육, 금식이 많이 약화되었다. 물론 장로교 같은 곳에서도 사순절에는 금식기도라 해서 금식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가톨릭, 정교회에서의 의미와는 다소 다르다. 이에 대해 극보수 성향의 일부 신학자, 목회자가 가톨릭적 인습을 답습하는 처사가 아니냐며 자발적인 금식기도 같은 것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금식 자체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먹는 걸 금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내게 이렇게 소중한 행위를 중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집중을 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죄가 되지는 않는 선이라고 하더라도 평소에 어느정도 보던 TV 프로그램이나 게임, 친구와의 만남, 기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용 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찾고 기도하는 것이 금식의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스마트폰, 카톡, 유튜브, 웹툰 등을 절제하는 것도 넓게 보면 금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물론 절박함이 크다면 여기서 나아가 정말 음식도 끊는 수준까지 갈 수도 있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자굴에 갇힌 [[다니엘]]을 걱정하여 오락을 폐했을 뿐 아니라 식사는 물론 잠까지 못 이뤘던 일(단 6:18)을 떠올려 보면 된다. 기도의 주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다 집중적으로 구하며 친밀함을 다지기, 부담을 느낀 특정 사람의 영혼을 위해 부르짖기, 아니면 상술된 여러 오락적인 행동 자체가 경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유익하지는 않고 다만 무거운 짐(히12:1)이 될 수 있으니 떨쳐 버리기 위해서, 또는 오랫동안 싸웠지만 이겨내지 못한 특정 죄에 대한 승리,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없으면 이겨낼 수 없는 시련 등 다양한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형편상 끼니를 거르는 것에 어려움이 많은 사람이라면 식사 자체에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고 더 하나님을 간절히 구한다는 마음으로 행하면 된다. 억지 금식[* 억지로 하면 요요현상이 심하게 올 확률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이 분위기 등에 휩쓸려 이벤트성으로 금식이나 봉사 등을 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과로 그 사람은 그 행위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는 마음을 품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따라서 죄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성화 수준을 갖추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금식은, 그동안 너무나 익숙해졌던 육신의 요구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그런 성향들을 옅어지게 하고, 금식이 끝났을 때 죄의 유혹을 금식 전보다는 덜 받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이 죄라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은 말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만 계속 찾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음식에 중독된 성향 같이 세상에 길들여진 습성들을 금식을 통해 옅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금식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하는 것이지, 금식이라는 육체적 고행에 따른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금식을 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장 15-16절)] 금식이라는 행위가 자기 의가 되어버리면 안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