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친혼 (문단 편집) ==== 중국 ==== 중국에서는 고대 [[주나라]] 때 종법이 확립된 이후로 동일성씨 결혼까지도 금지되었다. 이는 [[한나라]] 이후로 유교가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강화된다. 이는 근대까지 계속되어서 [[명나라]] 때 조선에 파견온 사신이 조선의 양반들이 본이 다른 동일성씨 결혼을 하는 것까지 오랑캐 풍습이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덕형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덕형은 본인도 이씨고 본인의 아내도 이씨였다.(이덕형은 이산해의 사위이다.) 그래서 이항복이 "이덕형은 본디 김씨였는데 재주가 뛰어나 왕이 특별히 이씨 성을 하사했다."고 구라를 쳤고 그러자 사신이 성을 하사받을 정도로 능력있는 분을 몰라봤다며 사과했다고. 이는 사실 성 외에 본관이란 개념이 있는 조선과 그런 게 없는 중국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덕형의 아내도 이씨긴 했지만 본관은 이덕형과 달랐다.][* 중국도 고대까지는 본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씨다. 이 시기에는 성과 씨가 구분되어서 성은 집안, 씨는 출신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성과 씨의 개념이 통합되면서 성씨가 되어버렸고, 그 이후 중국은 본관의 개념이 사라졌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성씨가 다른 이종사촌 혹 교차사촌(고종사촌/외사촌)과 결혼은 가능했다. 중국에서 금지된 근친혼은 아버지의 형제의 자식에 해당하는 사촌 뿐이었으며, 1981년 법 개정 때에 이르서야 사촌간 결혼이 금지되었다. 현대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친족만 아니면 동성결혼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장 폭군들이나 상대적으로 근친상간에 관대한 이민족 출신 왕조는 동일 성씨에 해당하는 친족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도 종종 무시했다. [[청나라]]의 [[가경제]] 이후 황제들이 단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순치제]]와 그의 황후들, [[강희제]]와 효의인황후는 외사촌 관계였다. 청나라 초기에는 조카가 고모 따라 시집가는 관습이 흔했기 때문이다. 황자들의 정처인 적복진들도 대부분 그 어머니가 방계 황족인 경우가 아주 흔했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근친상간이 널리 퍼져 있었던듯 하다. [[제환공]]의 형인 [[제양공]]은 누이동생 [[문강]]과 결혼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이후 [[노환공|노나라 환공]]에게 문강이 시집간 이후에도 계속 관계를 맺다가 이것이 발각되자 노환공을 암살했다. 이 때부터 제환공이 임금에 오를 때까지 제나라는 피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그 외 [[육조시대]] [[유송]] 왕조도 근친상간으로 유명하다. 자기 고모나 사촌동생, 심지어 누나와 성관계를 맺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유송 왕조는 족보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불륜관계가 아닌 정식 혼인관계 대상들도 친척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유송 거의 전체가 막장이 아닌 황제가 별로 없어서 황족을 주살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유준이 비교적 정상적인(어디까지나 유송 황제들 중에서) 황제일 정도였다.] 금나라의 [[해릉양왕]]도 여기 못지않다. 숙모나 처제에서부터 심지어 조카까지 겁탈했다. 삼국시대의 [[하안]]은 '''자기와 어머니가 같은 여동생'''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버지야 달랐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가 섞인 남매간에 근친이라니 사실이라면 막장도 이런 개막장이 없을 것이지만, [[배송지]]가 이 이야기를 부정한 것도 있고, 증거가 거의 없는데다 조조의 양아들 급으로 총애를 받다가 사위까지 되었고 학문적인 성취도 대단했거니와 정치적으로도 세상을 쥐고 휘두르는 권세를 누릴 때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하다 인생 말년에 숙청당한 케이스인데도 반대파가 근친혼으로 별 다른 말을 남긴 적이 없다보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편. 그 외 근대 중국 군벌이었던 마부팡(馬步芳)은 "나를 낳은 자와 내가 낳은 자를 빼면 검열삭제를 못할 자가 없다"는 막장선언을 하기도 했다. 사촌과 결혼하는 정도였다면 마부팡이 속한 [[회족]]은 현대로 올수록 한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문화적으로 꺼리게 된 거지 법적으로는 합법이었다는 말이라도 하겠지만 발언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