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친혼 (문단 편집) ==== 이집트 ==== [[고대 이집트]]는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파라오]]는 '''친누이나 이복 누이와 결혼'''해서 계승권을 인정받는 관행이 있었다. 특히 [[왕후]]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후궁]]의 아들을 [[정비]]의 딸과 결혼시켜 후궁의 아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했다. 파라오의 저주로 잘 알려진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두 여자 아기들의 [[미라]]가 발견이 되었고 이들과 투탕카멘을 포함한 이집트 왕가의 DNA를 조사한 결과, 이 아기들은 투탕카멘과 그의 '''배다른 누나이자 왕비'''였던 안케센나멘[* [[네페르티티]]의 딸로 [[아크나톤]]의 여동생의 아들이었던 투탕카멘과는 '''이복남매 사이'''였다. 투탕카멘과 그녀의 자식들은 같은 무덤에 매장되었지만 안케센나멘의 최후나 시신과 무덤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의 자녀들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아버지는 [[아톤]] 신을 받들기 위한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아크나톤[* 아멘호테프 4세로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와 동명이인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위해서 '아멘 신이 기뻐한다'는 의미의 아멘호프에서 '아텐 신의 종'이라는 아크나톤으로 개명했다.]인데 '''투탕카멘의 어머니는 아크나톤의 친여동생으로'''[* 즉 아크나톤은 자신의 친여동생과 결혼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아멘호테프 3세의 자녀들이었다. 이 아멘호테프 3세는 '''네 명의 딸들 중 한 명은 자기 아들과 결혼시켜 며느리로 삼고, 남은 두 딸은 자기 아내로 삼았다.''' 신화에서도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남매이지만 동시에 부부라서 고대 이집트에서 남매간 근친혼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근친혼의 사례는 많았으며 이는 [[그리스]]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도 이어졌다. [[클레오파트라]]만 해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공동 즉위하면서 남동생과 결혼했다.[* 즉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NTR|남편 겸 남동생을 숙청한 것이다.]]] 다만 이후 이뤄진 두 번의 결혼은 당연히 정상적인 결혼. 이후 기원후 3세기까지 민간에까지 퍼져 이어졌다고 한다. 최근에 당시 기록된 이집트인의 호적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친남매끼리의 결혼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허나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이런 풍습은 사그라든다. 하지만 이는 이집트만의 풍습으로써 다른 지역에서는 이집트인을 변태+미개인이라고 까는데 쏠쏠하게 써먹었다. 오죽하면 [[히타이트]]는 다른 문서도 아닌 국서에서 '''여동생과 관계를 맺는 너희는 야만족이고 그런 일 없는 우리는 문명인이다''' 하는 식으로 쓴 적도 있다. 하다못해 원시 사회에서조차 근친상간은 금기시됐고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을 어머니가 양육하는 게 보편화된 것도 근친상간을 막기 위한 목적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이들도 근친혼을 했던 만큼 파라오들은 유전병으로 몸이 약했다. 그랬기에 [[세티 1세]]가 친정을 나서 이집트에 다시금 정복군주가 나타났단 것 외에도 전장에서 직접 칼을 휘둘렀단 것도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