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초고왕 (문단 편집) == 명칭 == || '''명칭''' || '''한자''' || '''출처''' || '''국가''' || '''시기''' || '''비고''' || || 근초고왕 || 近肖古王 || 《[[삼국사기]]》 || 고려 || 1145년 ||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명칭. || || 여구 || 餘句 || 《[[진서]]》 || 당 || 644년 || 중국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백제왕(372년) || || 조고왕 || 照古王 || 《[[고사기]]》 || 일본 || 712년 ||<|3> 일본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백제왕(396년?) || || 초고왕 || 肖古王 || 《[[일본서기]]》 || 일본 || 720년 || || 속고왕 || 速古王 || 《신찬성씨록》 || 일본 || 815년 || [[동성왕]] 이전까지 백제의 왕 대다수가 이름을 왕호로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이름은 '''초고 / 조고 / 속고'''로 추정된다. 셋은 의미상 동일한 단어의 다른 표기인데, 고대 한국어에서 같은 파찰음인 ㅊ, ㅈ, ㅅ 음가의 상호 호환성은 옆나라 신라의 [[김흠순]](純)과 김흠춘(春), [[김용수(신라)|용수]](樹)와 용춘(春), [[김관창|관창]](昌)과 관장(壯)과 같은 이표기 사례들을 참고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백제 왕실의 [[국성]]이 부여씨(扶餘氏)라는 점에 미루어 《진서》에 기록된 '여구'라는 이름은 성을 '여', 이름을 '구'로 축약 표기한 것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축약 표기의 사례는 다른 기록들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고가 구가 된 것은 고대인의 인명 표기시 방언이나 필사자의 모어, 습관 등의 이유로 모음의 전이가 일어난 것으로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자주 관찰된다. 근초고왕의 경우는 이표기가 많이 남아서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대수||왕호||한자||대수||왕호||한자|| ||4대||[[개루왕]]||蓋婁王||21대||[[개로왕|근개루왕]]||近蓋婁王|| ||5대||[[초고왕]]||肖古王||13대||근초고왕||近肖古王|| ||6대||[[구수왕]]||仇首王||14대||[[근구수왕]]||近仇首王|| 백제의 왕계를 살펴보면 위와 같은 대응이 이루어지므로, '근초고왕'의 [[가까울 근]](近)이 이전의 왕과 구분짓기 위해 부기된, 서양의 '2세'와 비슷한 의미의 글자로 추정되기도 하고 한국어 '큰'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고구려에서도 [[태조대왕|궁]](宮)과 이를 따온 [[동천왕|위궁]](位宮)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다른 일설에는 [[고이왕|고이왕계]]인 [[계왕]]을 물리치고 초고왕계 왕통을 복구해서 왕명이 근초고왕이 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개루왕의 용례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았을 때, 단순한 동명이인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함부로 결론짓기는 애매한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