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초고왕(드라마) (문단 편집) ==== 위례궁 ==== * '''[[계왕(근초고왕)|계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실존'''}}} {{{-1 ([[한진희]] 분[* SBS 법정 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 회장 역을 맡았다.])}}} 백제 제12대 어라하. 분서왕의 맏아들로, 부여민, 부여문, 부여화의 아버지. 비류왕 암살에 가담하고 해소술 소생도 몰살하려 하는 등 왕위와 정치보복에 눈이 먼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은 비류왕 못지않게 백제 만을 위하는 인물이다. 초고왕계의 팽창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며 고이왕계의 화평노선을 유지한다. 후일 해소술에 의해 독살당하자, 임종 전 해소술 소생의 여찬과 친자인 여민이 백제를 분할하려 하자, 백제가 고구려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신념을 내비치며 해건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백제와 함께 부여구에게 바치라고 유언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 '''소해비 해여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가공'''}}} {{{-1 ([[김보미(1958)|김보미]] 분[* [[대왕 세종]],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원경왕후, 명성황후의 심복인 한상궁, 홍상궁 역을 맡았다. 전작에서 주인으로 모셨던 [[최명길(배우)|최명길]]과 적으로 다시 만난 셈.])}}} 계왕의 정실 부인으로 부여민, 부여문, 부여화 등의 어머니. 위례궁의 안주인이지만 여러모로 친척 언니인 해소술에게 눌려 살아왔다. 계왕 부여준이 왕위에 오르며 드디어 살만하게 되나 싶었지만 남편은 옛정을 잊지 못한 탓인지 첫째 왕비의 자리와 그 처소인 완월당을 해소술에게 주어버린다. 게다가 태자까지 이래저래 부여찬에게 내어주더니 얼마 가지 않아 승하. 그 뒤에는 부여민과 부여문의 반란, 부여화의 반란 등을 봐야 했고 극 후반에는 손자 되는 부여광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러모로 극중에서 마음 고생을 가장 많이 한 인물 중의 하나. * '''부여민'''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가공'''}}} {{{-1 ([[안신우]] 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 [[측천무후|측천무후]]의 아들인 폐태자 이현 역을 맡았다.])}}} 계왕과 소해비의 장남이자 부여화의 첫째 오라비. 계왕이 즉위한 뒤에 태자 자리에 기대를 품었지만 완월당 해소술의 계략으로 태자는 부여찬이 먹어 버렸다. 계왕은 대신 위례공의 작위를 주어 부여민을 달랬고, 이후에는 대방으로 향하며 만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해소술과 부여산을 죽이고 즉위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러나 대방에서 계왕이 죽어 돌아왔고 이후에는 근초고왕이 즉위해버리며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대신 동생이 원수와 결혼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게다가 그 동생이 원수의 아들을 낳는 즈음에 가서는 부여찬, 부여산과 힘을 더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부여찬과는 한성과 미추홀을 나누어 서로 나라를 갈라 가지기로 협약하기도 했다. 종국에는 반란이 실패하여 동생인 부여문과 함께 참수되어 그 수급이 효시된다. * '''석라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가공'''}}} {{{-1 ([[최지나]] 분[*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서는 [[명성황후 민씨]] 역을 맡았다.])}}} 부여민의 아내로 석륵이 세운 후조 황실 출신이라는 설정. 정략혼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부여민과는 나름대로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석라해가 조나라 황실 출신이라는 점이 부여화의 인맥으로 부각되어 부여화가 고구려에 있을 때 고구려와 조나라의 동맹을 위해 업도로 파견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아들이 왕위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봤지만 그 반란은 실패. 반란 진압 이후 열린 남당 회의에서 소해비와 함께 부여광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기도 한다. 말버릇은 '네 이년! 입을 찢어놓을라.' 작중에서는 단단이가 이 말을 자주 들었다. * '''부여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가공'''}}} {{{-1 ([[황동주]] 분)}}} 계왕과 해여울의 차남이자 부여화의 둘째 오라비. 무력으로는 부여휘와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성격이 매우 급하고 불같다. 친형 부여민과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처형된다. * '''부여광'''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가공'''}}} {{{-1 ([[서현석(배우)|서현석]] 분)}}} 계왕 부여준의 손자이자 부여민과 석라해의 아들로 유복자다. 부여민의 반란 이후 태어나 고모인 부여화의 손에 자랐다. 부여화는 부여광을 왕으로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아이를 기른 모양. 그러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식견이 충분치는 않은 듯 하며 반란군의 최후 전투 직전에 내분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오히려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내기도 한다. 해서 반란이 진압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이 이를 살려주어 요서군공으로 내보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