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본주의 (문단 편집) == 현황 == 안 그런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근본주의 집단들은 대부분 세속 사회와 충돌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리를 확대해석한 나머지 '''경전의 내용을 자신들이 가장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종교계에서 근본주의가 나타날 경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생활양식이나 가치판단 등에 있어 교리에 근거한 자신들의 기준을 절대화하는 자체는 개인 차원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을 사회 전반에 강요하고 뜯어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미시]] 같이 아예 고립적인 근본주의적 집단들은 사회에 물의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는 모양인데, 아미시 공동체 내에서 [[작은 사회]]의 전형적인 성폭력, 근친 문제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 [[하레디]]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도 현실에 맞춰 지키던 600여 개 계율을 현대 문명을 거부하며 지키는데, 이들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순수 유대인, 즉 과거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토라 뿐만 아니라 세속 지식까지 다 배웠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무력으로 원주민을 쓸어버리고 유대인만을 위한 신정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19세기까지 정통 유대교 랍비들은 회당에서도 히브리어만 쓰고 개신교식으로 찬송가를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진보적인 주장에도 반대했지만, 과격적인 시온주의는 그저 미친소리로 여기고 회당 안에서 시온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들을 빗자루를 휘둘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반유대주의, 동유럽의 [[포그롬]]이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유럽 내 보수 정통 신학을 가진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자, 2차대전 전후 평소에 회당에도 나오지 않던 과격 급진 무리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받기 위해 극단적 종교근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개신교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근본주의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미지들은 사실 근본주의가 아니다. 18세기까지 유럽의 개신교 학자들에게 있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는 문구는 1~2세기 사도 시절에만 해당된다고 보는 게 통설이었다. 그리고 [[신비체험|성령체험, 방언]]은 역시 성서시대에만 나오는 것으로 보는 은사중지론이 19세기까지 통설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시기 칼로 전도하는 과혁혁명론자와 성령을 직통으로 받는다는 토마스 뮌처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을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사중지론을 설파한 대표적 인물인 벤저민 워필드(B.B.Warfield)는 실제로 [[장로회]]의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근본주의하면 보통 [[이슬람]]이나 [[기독교]](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주의]] 계통)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일신교 계통 종교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종교도 근본주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나라에 따라서 권유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막장스런 나라들은 아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예 나라 전체나 특정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421&aid=0002784114|최근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이슬람 도축업자들을 살해하고 다니며]] 미얀마와 태국의 극단주의 불교도들은 소수 종교인 이슬람과 소수 민족들을 탄압한다. 간혹 아미쉬 공동체들을 근본주의라 여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나 종교를 절대화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고 살아가는 타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주의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당장 아미시 공동체가 그렇게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사람들인지 부터 의문이고[*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성폭력 같은 문제는 외부에게 피해주지 않으니 근본주의적 민폐와는 다르다는 현대 '''보편''' 인권의 개념을 아예 물말아 먹는 신박한 반론도 가끔있다.] 애초에 근본주의의 정의에서 사회적 민폐는 부차적 요소고, 17세기 이민 당시의 종교관, 사회관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아미시는 근본주의 맞다. [[이바디]] 이슬람 처럼 그냥 외부와 차단 자체를 끊고 사는 것이지, 외부 전파를 안한다고 해서 근본주의가 아닌 게 아니다. 한국의 경우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의 [[모더니즘]] 비판을 통한 [[전통주의 가톨릭|근본주의]]와 개신교 대다수 교파에서 [[정통주의]]적 태도를 통해 근본주의와 비슷하게 보이는 문제[* 물론 근본주의 종파도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교단에 비해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분명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처럼 타 종교인을 상대로 살해나 테러 등의 종교 분쟁이 미약한 수준이다. 이는 좋은 치안에 기여하고 있다. 근본주의가 한국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 도올 [[김용옥]]은 한국은 [[샤머니즘]]적 [[기복신앙]]과 유가적 현실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즉, 종교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복신앙적 요소는 종교 내부에서 크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고 적대시하는 경향도 있기에 무조건 옳은 주장이라고 하기엔 아니다. 또, 이러한 주장은 [[주기철]]을 비롯해서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게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기독교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이런 근본주의 회귀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200여년 동안 분명히 있었다. 이 시기에 성리학 교조주의로 인해 여성인권이 급격하게 후퇴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근본주의가 자리잡기 힘든 또다른 이유는 일본[* 메이지 유신부터 버블경제 시기까지의 일본.], 러시아[* 러시아 제국 또는 소련.], 중국[* 아편전쟁 이전 특히, 명나라를 비롯한 한족계 중화제국.], 몽골[* 몽골 제국.], 영국[* 대영제국.], 아랍권[* 아바스 왕조 또는 우마이야 왕조.], 그리스[* 마케도니아 제국, 동로마 제국.],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제국.], 이탈리아[* 로마 제국.], 동유럽을 제외한 서양권 공통[* 식민 제국.]와 달리 돌아가고 싶은 근본에 대한 향수가 희미하다는 점에 있다. 원래 근본주의는 그 존재 자체가 과거 회귀의 성격을 갖는다. 전세계적으로 원리주의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국가나 지역의 특징은 ||1)내부 모순이나 외침 등으로 국력이 쇠락하거나 핵심권력이 쇠락하여 혹은 외세의 지속적인 이권 침탈로 장기적인 존폐의 위기를 느낄 때, 2)그리고 그 국가나 핵심권력이 가장 강성해서 타국을 압도했던 역사적 전성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 즉 [[라떼는 말이야]]의 국가버전 내지는 민족버전이 근본주의이다. 즉, 한국의 역사적 전성기가 언제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갈 근본인데, 현재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멀거나, 내 역사같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가 강성했다고 생각한 시기는 고구려와 해동성국 발해, 고려 전기에서 중기 정도로 여기지만 현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랑스러웠던 시기인 것은 인정하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는 점도 있다. 이는 TV 및 여러 매체로 접하는 사극이 대부분 조선시대이고 사료 및 상세한 자료도 조선시대가 가장 많이 남겼다는 점에서 영향이 크다.[*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복장이 떠오르는가, 삼국시대 복장이 먼저 떠오르는가? 여기에서 인식하는 차이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 및 한국의 역사서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각종 역사, 철학, 설화, 과학기술, 음식, 문화 등 한국적인 가치를 발굴하고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응용되고 활용되는 시대가 조선시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구려와 발해는 강성했던 나라였다는 점에서 인지는 하지만 평소 일상적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모습을 자주 접한 까닭으로 조선시대를 더 친숙하게 여긴 점에서 근본주의의 세가 약하다는 점이 한 몫한다고 본다.[* 대체로 조선이 정조 이후 [[삼정의 문란]]으로 약해지는 시기이고 이 시기는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근본주의에 대해 회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마라타 동맹]]이나 [[프라티하라 왕조]]시절 힌두 통일왕조시대로 돌아가겠다고 길게는 1천년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현 [[인도 인민당]]의 프로파간다나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튀르키예주의 같은 것도 허황되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2천년도 넘은 우리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역사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일리가 만무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비록 실효지배영토는 과거의 반토막이 났을지언정 지난 천년을 통틀어도 가장 강력한 세계 10위권의 경제적,군사적 선진국 수준으로 국력이 성장했고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선망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한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도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프리미엄을 누릴 정도로 국력에 맞먹는 국격 상승이 이루어졌다. '''지금 한참 잘나가고 앞으로 더 잘나갈 사람이나 민족이 한참 멀리 있던 과거나 근본 따위 신경쓸 이유가 없다.''' 거기다 대비효과로 길게는 17세기 초(양란으로 인한 국토 초토화), 가까이는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의 과거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리즈시절이 아니라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흑역사'''쪽에 가깝다.[* 반대로 일본은 오히려 이 때가 적어도 영토적으로나 자체적으로 리즈시절에 가깝다. 물론 일본도 외려 국가의 부나 국민의 풍요 등과 종합적인 국력의 면에서 1980년대 시절이 최전성기지만 동맹국인 미국에 따라다니는 면이 많았다. 반면 일본 제국 시절은 대만, 조선, 만주 등을 점령하고 중국 정복에 나서며 동남아시아까지 점령하는 등 '영토상으로는' 전성기처럼 보이며 강대한 미국과 전쟁을 벌여서 겉만 보면 일본 제국이 전성기 같다.] 한국인이라면 조선말기 외세로 인한 혼란,일제강점기, 6,25로 초토화된 국토, 피로 얼룩진 군사독재정권 지배를 당했던 지난 100년 중 누구도 이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국가나 집단 전체의 근본주의 성향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중적 지지도 받지 못한다.[* 한국 기독교계도 근본주의보다 온건한 복음주의 성향이 강하다. 전통 가톨릭이나 성경침례교나 한국에서는 교세가 거의 없다. 보수 개신교계에서 자신들의 전통 신학을 근본주의라고 자칭하기도 하고, 종교다원주의에서 각 종교계의 중요 교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근본주의라고 매도해서 한국에서는 보수주의 신학 = 근본주의라고 크게 잘못 알려졌다. 게다가 북미와 제3세계에서 크게 흥행하고 있는 오순절 신학이 한국 개신교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몰락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한국의 노년 보수층이 '그때가 좋았지'라고 이는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전성기인 2~30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지, 그 시절의 경제적 절대빈곤,사회적 경직성까지 다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설혹 그 시절을 부러워해도 그건 "라떼는 말이야~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정신적/심리적으론 퐁요로웠어~" 식이지 절대 그시절의 처참한 절대빈곤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가난도 좋아했다면 산업화 시기에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지도 않았을것이다. 또한 한국은 근본주의로 퇴행해서 외세의 침탈을 비롯한 국제 정세의 풍파를 겪은 역사도 이미 있는데다, '''그 근본주의 퇴행때문에 [[일제강점기|나라가 망해 고통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 당장 못살아도 그때의 과거를 반복했다가 또 망할거라는 공포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있어''' 더 거부감이 심할 수도 있다.[* 이는 멸망한 조선을 계승한 현재의 민주공화주의자들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내용도 있다. 거기다, 겉으로는 미국식 공화주의자였지만 자신을 마지막 조선의 왕처럼 생각했던(조선의 왕이라고 생각했다고 씌어져 있었는데 이승만은 조선 왕실의 후손이고 왕처럼 행세하는 등의 면모가 있지만 자신이 공화국 원수라는걸 잊지 않았다.) [[이승만]]을 몰아낸 [[4.19 혁명]]을 통해 조선의 복고를 노리던 세력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이승만부터가 조선 복고의 싹을 깨끗이 잘라내 버렸고 오히려 그 뒤에 들어선 박정희 정부가 구 황실에 온정적이었다.] 흔히들 조선시대는 전반에 걸쳐서 유교에 목매단 시대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건 후기 얘기고 전기까지만 해도 시집살이도 하고 신사임당의 사례에서도 보듯 마냥 여성이 남성에게 눌려지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세종대왕이 '''주자라고 다 맞는 건 아니지 않는가?'''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래도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게 유교니까 유교를 제일 앞세우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교를 '''우선적으로''' 앞세우는 거지, 그것만이 옳고 그것만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허나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뒤, 뒤이어지는 경신대기근 등 기후변화로 닥친 재앙으로 인해 조선의 사회질서가 흔들리면서 기존의 지배층인 양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경신대기근 당시의 양반들은 임진왜란 이전과 달리 교조적인 성향의 사림 계열이 주류이다.]은 다시 기존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교를 끌어왔고 덕분에 조선후기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조선의 모습이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사회질서가 잘 잡히고 조선이 다시금 조선전기의 영광을 누렸냐면 역사에서 보듯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역사는 영조, 정조 시기만 평가가 좋은 편이고 정조 이후부터는 우리가 다 아는 막장 시대가 열린다. 유교가 욕을 먹는 대부분의 이유가 조선후기와 이후 변질된 유교적 전통에서 유래되니 이미 근본주의에 데여본 역사와 여파가 남아있는 현실이 근본주의의 싹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 개신교도 이러한 유교 근본주의를 밀어내버리고 가장 교세가 큰 종교가 되었다. 이들은 개신교 정통 신학을 근본이라고 자칭하면서 다양한 서양의 기술과 사조들을 개신교의 시각으로 갖고 왔다. 이들은 오히려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을 금지하는 근본주의는커녕 개신교의 중요 교리들만 강경하게 지키고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들은 방조하는 보수주의 신학이 주류를 점해버렸고,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고 교세를 더욱 키우기 위해서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와 크게 연계되어 있기에 한국을 제1세계에 편입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한국의 황금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함석헌]], [[길선주]] 등 개신교 신자였던 독립운동가들도 왕조와 유교 근본주의가 대한제국을 말아먹는 것을 직관했기에 개신교 신자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삼긴 했어도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진지하게 정교일치를 시도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과 냉전 때문에 영미권 국가들이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개신교 신자들을 도와줘서 그런지 개신교 쪽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영미권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아 민주주의&공화주의 성향을 띄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천도교와 대종교가 가장 교세가 컸기에 오히려 개신교 신자들이 국교 지정을 반대했다.] 오히려 이들은 개신교 정통 신학의 영향으로 중요 교리만 잘 지키고 나머지를 너무 널널하게 허용한 탓에 몇몇 교회 행정과 실생활에서 성경의 일부 내용들을 안 지켜서 비판받고 있다.[* 한국의 유일한 기독교 정당인 [[국민혁명당]]이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신학을 내세우고 온 사회에 어그로를 끄는 것만 보면 와닿진 않겠지만, 사회적인 통념과 다르게 세속적인 일반인 입장에서는 개신교계에서 보수주의 신학이 주류를 점하지 않으면 귀찮아질게 굉장히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의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주의 신학은 세속 정치에서 집권하자는 정치적 기독교 이데올로기와 다른 개념이다. 애초에 개신교는 태동기부터 가톨릭에게 살아남기 위해 세속 정부를 지지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를 통해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가 등장했다.]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와 같은 말의 문제는 이것이 [[일부 이단]] 논리와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가령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이건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책임이지 온건(moderate)주의자들은 상관없음"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종교에 의한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서구권 등지의 경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에 책임을 돌리지 특정 종교의 명백히 존재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이나 비판이 쉽게 무력화된다는 폐해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이단 논리가 지지를 얻는 순간 세를 확장하여 자신들과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다른 집단에 '''너 [[이단]]'''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천봉쇄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극단적 태도를 해당 종교의 평화적 교리로 비판하려는 운동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 해당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건주의자가 근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교리에 대한 곡해와 왜곡으로 해석하여 근본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경우엔 온건주의자들은 근본주의가 '''근본'''이란 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해당 종교의 근본이 그런 폭력적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들이 과학과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온건주의가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술된 부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민족주의]] 또는 부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을 근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가 많이 범해지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 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수단일뿐, 본질적으로는 자기 민족이 가장 강한 힘의 논리일 뿐이다. 가령 [[불교]] 문서에 있는 [[이슬람]] 대 불교라든지 [[힌두교]] 문서에 나와 있는 힌두교 대 타 종교라든지 하는 문제들은 신도들이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를 근본주의적으로 실천한다기보다는 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더욱 강한 동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읽는데 주의를 요하며 꽤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