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극동국제군사재판 (문단 편집) === 사형(교수형) === 사형 집행 방식은 전원 [[교수형]]이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는 다르게 미국 측에서 현역 군인이라 할 지라도 강력하게 총살형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독소전쟁]]의 [[소련]]이 엄청난 희생을 치룬 것처럼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아주 지옥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현직 군인들 3명[* 도조 히데키, 무토 아키라, 기무라 헤이타로]에 대한 총살형을 강력하게 반대해서 전원 교수형을 선고한 것이었다. 또한 교수형 집행시에도 군복이 아닌 죄수복을 입은 채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반대로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의 경우에는 카이텔과 요들이 군인 신분이라 군복 착용을 허용받고(다만 서훈 및 계급장은 강제탈거되었다.) 군복을 입은 채로 [[교수형]]을 집행했다. 대신 독일은 줄길이를 고의로 조절해서 고통스럽게 액사(질식사)로 죽은 반면에 일본은 전원 롱 드롭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또한 유태인 절멸수용소의 소장 등은 별도의 재판에 넘겨진 후 대부분 그들이 군림하던 그 장소(수용소)에서 요제프 랑 방식으로 질식해 죽었다.] || '''이름''' || '''계급 및 작위''' || '''직책''' || '''혐의 및 역할''' || '''기타''' || || [[도조 히데키]][br](東條 英機) || 육군 대장 || 제40대 내각총리대신 ||진주만 불법공격과 태평양전쟁의 총책임자.||현직 군인이라서, 군복을 입고 [[총살형]]으로 처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기각.|| || [[이타가키 세이시로]][br](板垣 征四郎) || (예)육군 대장 || 관동군 참모장 ||중국 전선에서의 전쟁책임자||예비역에 편입된 상태라서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에 임함. || || [[도이하라 겐지]][br](土肥原 賢二) || (예)육군 대장 || 제12방면군 사령관 ||봉천 습격 및 중국 대륙에서의 학살죄||예비역에 편입된 상태라서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에 임함. || || [[기무라 헤이타로]][br](木村 兵太郎) || 육군 대장 || 버마 방면군 사령관 ||육군차관으로 [[중일전쟁]], [[진주만 공습]]을 포함한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조력함. [[버마]]에서 강제노동을 통하여 포로를 학대하고 사망하게 한 죄|| || || [[무토 아키라]][br](武藤 章) || 육군 중장 || 제14방면군 [[총참모장]] ||필리핀에서의 포로학살의 죄[* 사실 무토 아키라는 [[다나카 류키치]]가 자신의 군부 내에서의 움직임을 법정에서 폭로한 것에 대해 사사카와 료이치에게 "내가 만일 교수형이 된다면, 다나카의 몸에 씌어서 미쳐 죽게해주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나카 류키치와 사이가 서로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마쓰이 이와네]][br](松井 石根) || (예)육군 대장 || 중지나 방면군 사령관 ||[[난징 대학살]]의 책임자[* 이쪽은 좀 억울한게 부하들이 저지른 죄를 독박 쓴 케이스이다. 마쓰이의 사형 판결에 연합군의 조셉 키넌이라는 검사는 "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마쓰이의 죄는 부하들의 죄였다. 종신형이면 충분했었다"라고 전해진다. 또는 굳이 마쓰이를 사형시키려거든 죄는 부하들의 죄였기 때문에 그 점은 감안해서 유일하게 명예는 존중하여 [[총살형]]으로 사형을 시키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 건은 기각되었다. 이와네 본인은 "(나는) 고급 장교들을 불러놓고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부하들의 짐승 같은 행위로 단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두들 나를 비웃었다"고 유언을 남겼다.] ||은퇴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에 임했다.|| || [[히로타 고키]][br](廣田 弘毅) || 남작 || 제32대 내각총리대신 ||태평양전쟁 당시 침략전쟁의 정책입안자[* 사실 이쪽도 좀 억울하다. 고키와 비슷한 죄를 지은 경우는 대개 장기 유기징역형으로 끝났는데 고키만 사형당했기 때문이다. 고키도 억울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6명은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부르고 사형당했는데 히로타는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고노에 후미마로]]의 죄까지 뒤집어 쓴 것으로 보고 있다.] ||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