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인 (문단 편집) == 현대 그리스인의 탄생 == [[오스만 제국]] 시절만 해도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정교회를 믿는 오스만 제국 내에 거주하는, 훗날 그리스인으로 불리게 되는 민족들은 모두 로마인이라는 뜻으로 룸(Rum)이라고 불렸다고 앞의 문단에서 밝혔다. 현대 그리스(엘라다 공화국)의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에도 이들은 룸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이 룸들은 각자 살던 지방과 마을, 씨족에 따라 나뉘었고, 심지어 단순히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공동의식 이외엔 동족의식조차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말부터 그리스인들은 정교회를 믿으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리스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각성하기 시작했다. 점차 그리스인들은 오스만의 지배를 거부하고 그리스인의 독립 국가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결국 1821년 그리스의 독립을 추구하는 비밀 단체인 친우회의 주도 아래 그리스인들은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시작으로 중부 그리스, 이피로스, 마케도니아, 에게해 제도, 크레타, 키프로스에 이르기까지 예전이었으면 그저 서로를 소 닭 보듯 쳐다봤을 그리스인들 전체가 오스만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오스만 정부의 가혹한 탄압으로 결과적으로 독립에 성공한 것은 펠로폰네소스와 중부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그리스인 뿐이긴 했지만. [[발칸 전쟁]] 이후 북부 그리스와 에게해 동부의 도서지방을 점령한 그리스 당국도 새로이 그리스로 포함된 영토를 점령지 다스리듯 총독부를 설치해 통치했고, 심지어 훗날 [[튀르키예 독립전쟁]]이후 인구교환을 통해 그리스로 추방된 아나톨리아에서 온 그리스인들도 2등국민 취급했다. 이렇게 지방으로 나뉘어있던 그리스인들을 통합한것이 메갈리 이데아(Η μεγάλη ιδέα)와 범그리스주의(Ο Πανελληνισμός, Panhellenism), 에노시스(Η Ένωσις)[*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모든 민족들이 하나된 국가로써 "통합"해야 한다는 운동으로 발칸 전쟁 이전부터 [[크레타]], [[마케도니아]], [[키프로스]]의 그리스 합병을 주장하는 제국주의적 사상으로 평가된다.] 운동이다. 메갈리 이데아 자체는 1920년대 초반까지도 팽배해있었지만,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에서 그리스가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군에게 패배해 추가적인 영토확장에 실패하고, 인구교환으로 튀르키예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돌아오면서 사상으로써의 영향력은 끝났기는 했다. 특히 메탁사스 이후 [[그리스 군사정권|군사독재정권]]에서 집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민족의 침탈을 강조했다. 현재는 많이 덜하지만 당시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튀르키예인]], [[알바니아인]]을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민족의 적으로 극단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오스만 제국 시기에 서로 주고받은 문화교류나 영향, 평화적인 공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에서도 [[튀르키예 커피]]라고 불리던 전통 커피를 "그리스 커피"라고 바꾼 것도 이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예이다. 물론 그 군사정권이 북키프로스를 튀르키예군에게 맥없이 내주면서 몰락했다는것은 아이러니하다. 한편 극우 민족주의에 기반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리스 내에 남아있던 알바니아인, 블라키아인[* 루마니아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집단.], 정교회 튀르키예인, 집시에 대해서도 그리스화를 강요했으며, 대표적으로 성명을 그리스화 하고 그리스어 예배를 강요하는 일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