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어 (문단 편집) === 현대 그리스어 === 지금 그리스에서 쓰는 언어. 중세 그리스어에서 이어진 민중어(디모티키)의 단순화된 문법에 많은 수의 코이네 그리스어 어휘를 이식해서 만들어졌다. 현대 그리스어는 [[튀르키예어]]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어휘들을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부활]]'''시켜 사용하고, 근대시대에 걸맞은 어휘들을 기존의 그리스어 형태소들을 접합시켜 그리스화해 그리스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령 버스는 그리스어로 λεωφορείο(leoforio)인데, [[라틴어]] 'omnibus'를 그리스화한 단어다. [[경찰]]을 뜻하는 αστυνομία (astynomia)도 '법을 수호하는 사람' 이란 뜻으로 창조된 단어.[* 재미있는 점은, 현대 [[튀르키예]]에서도 튀르키예어에서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리든 고어든 튀르크계 단어를 긁어모은 일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튀르키예어|튀르키예어 문서]] 참고.]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현대 그리스어로 넘어가는 현상은 이중모음 발음의 변화에서 추이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이미 [[동로마 제국]]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령 [[사도 파울로스|사도 바오로]]의 그리스어 표기는 'Ὁ Ἅγιος Παῦλος(모노토니코스 표기: Ο Άγιος Παύλος)'인데, 기독교 형성기에는 /ho ˈaɡios ˈpawlos/ 라고 발음했(던 걸로 추측되)지만 기독교 공인기에 이르면 마찰음화 때문에 /o ˈaɣios ˈpaβlos/ 로 발음되었다. 이후 9~11세기쯤에 구개음화를 거쳐 현대 그리스어와 거의 동일한 발음인 /o ˈaʝios ˈpavlos/ 로 굳어졌다. 단적으로 Γεώργιος 또한 코이네 시절에는 게오르기오스였으나 중세의 예오르이오스(구개음화)를 거쳐 오늘날에는 예오르요스(구개음통합)로 읽는다. 비록 [[고대 그리스|고대]]에 각 폴리스마다 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테네]]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고전 시대에는 아티케 발음이 정통으로 취급받았고 코이네 그리스어의 형성 이후에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비잔티온 천도 및 동서분열,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어 공인으로 인해 비잔티온(콘스탄티노폴리스) 발음이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공용어가 [[오스만어|튀르키예어]]가 되버리면서 어느 지방도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19세기 그리스 민족주의의 발흥을 기점으로 각 지방이 서로 내 발음이 정통이네, 누구의 표기법이 맞네 틀리네 주장하면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튀르키예어의 영향을 받은 단어들을 이미 1천여 년 전에 사라진 고대어를 부활시켜 가면서까지 갈아치우는 등, 대대적인 언어순화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구어체와 문어체 간 차이가 외국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커지게 되는 바람에 그리스어 표준화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렇게 19세기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그리스어에 내재한 튀르키예어의 영향을 배제하고 고대 그리스어의 규범을 살려 새로이 만들어진 그리스어 형태를 카사레부사(Καθαρεύουσα, '순수한 것'이라는 뜻)라고 했고, 당시 일반인들이 입말로 쓰고 있었던 그리스어는 디모티키(Δημοτική, '민중의 말'이라는 뜻인 Δημοτική γλώσσα의 줄임말)라 했다. 카사레부사는 그리스 정부에서 규정한 그리스어의 표준이 되었다. 카사레부사를 밀어주던 세력은 모든 그리스인이 카사레부사를 문어체로도 구어로도 쓰기를 원하였으나, 카사레부사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문어체와 공식 언어로만 쓰여 그리스는 [[양층언어]] 국가가 되었다. 카사레부사를 쓸 것인지, 디모티키를 쓸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그리스 독립 이래 100년 넘도록 치열하게 전개되어왔다. 이 논쟁을 그리스에서는 토 글로시코 지티마(το γλωσσικό ζήτημα), 즉 '언어 문제'라 하였는데, 이 논쟁이 치열했던 것은 그리스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동로마제국 멸망 이후 수백년동안 그리스어가 받은 오스만의 영향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이상론 측과 그리스 민족 대부분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측 모두 각자의 명분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독립 이후로 많은 그리스의 문학가들은 카사레부사뿐만 아니라 디모티키로도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한 흐름은 운율이 중요한 시로부터 시작되어 1880년대 이후로는 산문 문학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디모티키는 카사레부사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체계성과 표현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디모티키로는 고급 표현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카사레부사를 써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보수파들의 주장을 약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사레부사와 디모티키의 대립은 갈수록 커져갔다. 1911년 성경이 처음으로 디모티키로 공식 번역이 되자 카사레부사 지지세력이 대대적인 시위를 주도했고, 의무교육에서 어느 정도로 카사레부사를 가르칠 것인가, 혹은 디모티키 사용을 허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그리스 독립 이래 현대까지 쭉 이어져왔다. 1967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그리스 군사정권|군부]]는 디모티키를 비난하고 카사레부사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이들은 교육 현장이나 일반 문어체에서 허용되어왔던 디모티키 요소들을 싸그리 없애고자 하였다. 그러나 군부의 과도한 디모티키 탄압과 카사레부사 옹호는 오히려 그리스 민중에게 카사레부사에 대해 '낡은 것', '고루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뿌리박고 말았다. 결국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새로 구성된 민주 정부는 1976년에 그리스어 표준 규범을 디모티키(Δημοτική) 위주의 것으로 개혁하였고, 이로써 길고 긴 카사레부사와 디모티키의 싸움은 디모티키의 승리로 끝났다. 더 나아가 1982년에 카사레부사에는 필요하지만 디모티키에는 불필요한 그리스 문자의 각종 [[diacritic]]을 폐지하였다. 그렇지만 마치 오늘날 [[중국어]]에도 글에서 [[한문]]식 표현이 많이 보이듯이 현대 그리스어 문어체에서도 카사레부사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중앙은행인 '그리스 은행'은 Τράπεζα της Ελλάδος(뜨라뻬자 띠즈 엘라도스)라고 쓰는데, 디모티키 문법으로는 της Ελλάδας가 되어야 한다. 카사레부사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λεωφορείο(leoforio)같은 근대 문물에 대한 그리스어 명칭도 현대 디모티키 위주의 표준 그리스어에서 잘 쓰이지만 이는 대부분 디모티키 문법이 아닌 카사레부사 문법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현대 그리스에서 카사레부사는 민중의 입말과 동떨어졌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현대 그리스어의 표현력을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 그리스어 문헌으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나 무스쿠리]]의 저작이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