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라티아누스 (문단 편집) === 최후 ===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 따르면, 그라티아누스는 380년 무렵부터 타락했다고 한다. 기번에 따르면, 그는 자신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신료들이 정치적 알력 끝에 축출된 뒤 간신배들에게 둘러싸인 채 향락을 일삼았고 사냥을 지나치게 탐닉해 하루종일 사냥에 몰두하며 정력을 낭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냥은 고대 사회에서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군사 훈련을 병행하기도 하고 친위 세력의 단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므로 그가 사냥을 즐긴 것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당시 제국의 내정이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그라티아누스가 딱히 정사를 게을리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종교 정책으로 인해 불만을 품은 [[로마군]]을 통제하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383년]], 다신교 신봉자들이 많은 [[브리타니아]] 주둔 로마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마그누스 막시무스]]를 황제로 옹립하고 [[갈리아]]로 침입했다. 그라티아누스는 이에 맞서 군대를 소집해 [[파리(프랑스)|파리]] 인근에서 반란군과 맞붙었다. 그런데 [[베르베르인]] [[기병대]]가 뜻밖에도 그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에게 돌아섰고, 그라티아누스는 300여 명의 기병대만 이끌고 [[리옹]]으로 도주했다. 리옹의 총독은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지만 막시무스가 보낸 [[암살자]]들과 협상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대가로 그라티아누스를 넘기는 데 동의했다. 결국 그라티아누스는 383년 8월 25일 리옹에서 암살당했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