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권투 (문단 편집) === 국내 === || [[파일:attachment/권투/boxing_3.jpg|width=400]] || [[파일:attachment/권투/boxing_2_Wladimir_Klitschko_David_Haye.jpg|width=400]] || || '''2011년''' 4월 16일 한국 타이틀전 포스터[* 이 대회 관련 정보가 궁금하다면 [[http://www.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43|참고]]. 그래도 허접한 포스터 대비(...) 나름 규모 있고 즐겁게 치러진 대회긴 했다. 메인이벤트 에서는 도전자 박장욱이 챔피언 이재명을 꺾고 새 챔피언이 되었다.] || 동년인 2011년 해외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vs 데이비드 헤이' 전 권투 포스터 || || [[파일:8582310148d640be74e86031f2b863f2.jpg|width=430]] || [[파일:18b3bec4fca564a4c.jpg|width=430]] || || 그리고 3년이 지난 '''2014년''' 8월 30일 KBA 주최 경기 포스터[* 봤다시피, 3년 동안 오히려 퇴보했다. --[[대전액션게임]] 캐릭터 선택창. 요즘 학교 체육대회 포스터도 저렇게 형편없이 디자인하지는 않거늘(...)...--] || 그리고 대망의 '''2021년''' 7월 17일 KBA 한국타이틀 전초전 포스터 || 안타깝게도 엄청난 인재 수급과 더불어 활발히 빅매치가 잡히는 해외 복싱과는 달리 한국, 특히 프로 복싱은 과거의 흥행과 위상은 비웃듯 여러 문제점들로 인하여 정말 가혹하리만치 몰락해 있는 상태다. [[대한민국]]의 권투 현황은 생활체육과 아마추어 권투에서의 상당한 입지 확보와 프로 권투의 몰락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생활체육관은 제법 있는 편이다. 물론 동네마다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중형급 이상 도시만 돼도 권투 체육관 찾기가 크게 어렵지 않을 정도. 물론 한국에서 도장 숫자가 제일 많은 것은 [[태권도]]지만[* 물론 반은 유치원화 되어버려 성인 전문 도장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그 외 주요 도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합기도]], [[검도]], [[해동검도]], [[유도]], 2000년대 들어 MMA 붐과 함께 늘어난 [[킥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도장 정도의 위상은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레슬링]] 도장의 존재감은 인지도와는 별개로 매우 미약한 편이다. 가라테의 경우 [[극진가라테]]가 [[21세기]] 들어 대도시 위주로 어느 정도 들어온 상태. [[택견]] 도장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킥복싱, 무에타이와는 종목이 겹치다 보니 이들 도장이 늘면서 파이가 줄어든 건 있다. 아니면 권투 체육관이 아무래도 권투 단 하나만으로는 돈벌이가 어렵다 보니 다른 비슷한 일부 분야들까지 같이 겸임하는 종합격투기식 도장으로 편입 혹은 확장하는 경우도 있고... 도장 문화 자체가 크게 보면 사장세다 보니 이런저런 이합집산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프로 권투는 눈물겨울 정도로 심하게 몰락해 있는 상태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들겠지만, 옛날 1970/1980년대만 해도 권투 타이틀전은 대중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만드는 최고의 흥행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실제 [[무하마드 알리]]가 슈퍼스타로 떠오르던 글로벌 흐름과 비슷한 모양새로 1960년대부터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한 국내 권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많은 챔피언을 배출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알리 방한 당시엔 TV에서 꼭 보도와 생중계도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복싱 전문 월간지인 <펀치라인>이라는 잡지까지도 발행되고 있었다. 헤비급은 없었지만, 경량급에선 세계 챔피언도 자주 배출했었고, 중량급도 슈퍼미들급까지는 [[박종팔]] 등이 세계 챔피언을 여러 번 해먹었다. 그러다 보니 1980년대 권투 스타 [[장정구]][* 2009년에는 [[세계 권투 평의회|WBC]] 명예의 전당까지 들었다. 2013년에는 [[유명우]] 선수가 뒤이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가 한창 잘 나갈 때 1년 수입이 당시 돈으로 무려 '''2억 4천 1백만원'''이나 됐다. 물론 이는 광고 등 여러 부가 수입들도 포함된 것이겠지만, 당시 프로야구에서 [[장명부]]와 [[김일융]] 같은 거액의 돈으로 온 재일교포 선수들의 연봉이 8000만원대였고, 토종 국내 선수는 [[최동원]]이 7천만원으로 국내 선수 연봉 1위였던 걸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다만 프로야구는 당시 막 태동한데다 팀 스포츠라는 건 감안해야 한다.] [[축구]]는 당시 가장 잘 나갔던 [[허정무]]와 [[조광래]]가 3천만원이 조금 안 되는 [[연봉]]이었다. 물론 보너스나 광고비 등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총 수입은 좀 더 높았겠지만... 허나 1990년대부터는 다른 종목들이 인기를 끌며[* 이때도 농구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 골프 슈퍼스타 [[타이거 우즈]](국내에선 [[박세리]]) 등의 활약이 있었다. [[야구]]는 지역팀이 탄생하며 지역 아이덴티티가 생겨 '팀=지역' 경쟁이 불붙으며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고, 축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경기와 [[FIFA 월드컵]] 등의 인기가 예전부터 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권투는 서서히 인기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게다가 여러 가지 문제들까지 터져나오면서 현재는 처참하게 몰락하게 되었다. 마지막 세계 챔피언은 [[김지훈(권투선수)|김지훈]]으로, 2009년 IBO 슈퍼페더급 타이틀을 획득하여 2010년 1월에 메이저 기구 진출을 위해 반납하였다. 그나마 IBO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마이너 기구였기에 국내 유일의 세계 챔피언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진짜 메이저 기구의 마지막 챔피언은 [[지인진]]으로, 2007년까지 WBC 페더급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K-1]]으로 진출하기 위해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도 [[양궁]], [[레슬링]], [[펜싱]], [[유도]]와 함께 한국의 메달을 책임지는 주요 효자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으나, 효자 종목으로 불리는 것도 이젠 다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앞서 서술한 다른 4개의 종목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의 강세 종목들인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다만, 저 중에서 펜싱은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펜싱)|김영호]]가 플뢰레 금메달 이후 효자 종목이 됐다.] 올림픽에서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의 [[김광선]]과 [[박시헌]] 이후 금메달이 없고, 런던 올림픽에서 한순철이 은메달을 딴 것 외에는 그닥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함상명 단 한 명만 출전하였지만 16강에서 광탈. [[2020 도쿄 올림픽]]은 [[오연지]]와 [[임애지]] 두 선수가 출전했는데, 역시 모두 16강에서 한꺼번에 [[광탈]]. 그나마 [[아시안 게임]] 총 성적은 다행히 1962년부터 1990년 대회까지 압도적으로 메달을 획득해놓은 게 매우 많아서 2022년까지 금메달 59개, 은메달 25개, 동메달 301로 2022년 기준 2위인 [[우즈베키스탄]]과(금 23개, 은 20개, 동 23개) 아직은 차이가 크다. 특히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전 체급 금메달 12개는 물론 홈팀에 유리한 판정 덕분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기록이다. 또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부 [[신종훈(권투 선수)|신종훈]]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부의 [[오연지]]가 금메달을 획득하며 금맥을 잇긴 했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은 동메달 1개가 고작이었다. 역대 [[올림픽]] 권투 성적은 19위이다. 혹자는 이런 권투의 몰락 사유들에 대하여 사회 발전과 함께 잔인한 [[격투기]] 종목에 대한 대중 민심 이반 등을 거론하기도 하나, 사실 [[미국]], 일부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현재도 제법 유지되는 여전한 권투의 인기와 위상을 보면 저것들로 해석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고[* 권투는 사실 서양에서는 신사들의 스포츠로 불린다. [[럭비]]나 [[크로켓]]과 비슷한 취급.], 냉정하게 말하면 1류 권투 스타의 부재, [[세대교체#s-1]] 및 인기 유지의 실패, 잘못된 지도 방식, 국내 협회 측의 무능과 부패, 내부 분열로 인해 여기저기 난립해 있는 협회, 1990년대 이후 이종격투기 - 종합격투기 붐으로 인한 격투기 시장 자체에서의 위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격투기가 그냥 추월한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추월해버렸으니... 실제 국내 케이블 채널에선 [[UFC]]나 [[WWE]]는 중계해주지만[* WWE는 과거엔 욕먹던 각본 게임이라는 점을 오히려 역으로 활용하여 실전성 대신 오락성을 강조하며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WWE를 보면 경기적 오락성도 있지만, 그 외 토크, 콘서트, 상황극 등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권투는 국내는 고사하고 해외 권투 경기조차도 이제는 잘 중계해주지 않을 만큼 대중의 관심이 식어버린 상태다. 현직 챔피언이었던 선수가 생활고를 이유로 [[킥복싱]]으로 전향했다는 소식이나 장정구 같은 왕년의 잘 나갔던 권투 스타들이나 현재의 권투 스타들조차도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만 대충 읽어 봐도 한국권투위와 프로모터들이 상당한 개막장들임과 동시에 얼마나 썩어빠진 종자들인지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새터민 출신 모 여성 복서의 대전료를 주지 않아서[* 사실 여기 문서에는 잘 다뤄지지 않았는데 대전료를 떼먹는 행태도 한국 프로 복싱이 폭망하는데 큰 일조를 했다. 특히 프로 복서에 대해 헝그리 정신 운운하면서 프로모터들이 대전료를 상당부분 제하고 줬다는 얘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 수준.] 그 피해자 복서가 고소하는 사건도 있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0/09/0200000000AKR20131009104500004.HTML?input=1301p|#]] 게다가 기존 권투위 상황이 하도 개막장[* 선수들의 대전료에서 떼어가던 의료보험금이나 장려보험금까지 여기 간부들이 마음껏 떼먹어서 [[최요삼]]의 사망 당시 장례비가 단 한 푼도 없었다. 이에 전현직 선수들 분노하며 집단소송까지 제기했을 지경이다.]이라 국내에서도 안 그래도 약한 기반에 기구들까지 여럿으로 갈라서는 중이다. 기존의 한국권투위원회([[http://www.koreaboxingcommission.org/main.php|KBC]])에 더해 한국권투연맹([[http://www.koreaboxing.or.kr/|KBF]]), 한국프로복싱연맹([[http://boxingkpbf.com/home/index/|KPBF]]), 한국권투협회([[http://www.kbaboxing.co.kr/main/?PHPSESSID=7bfbe2b8f695c103e8ab4de1e3012c20|KBA]]), KBM까지 5개 기구로 나뉘어져서 제각기로 활동하고 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 코어 팬층은 간간히나마 존재하는 편임과[* 연예인 [[김종국]], [[장혁]], [[조진웅]], 기업인 [[김승연]] 등이 권투 팬이라고 한다.] 동시에 생활체육 기반은 상당히 두터운 편이라는 거다. 여성들에게도 점차 권투가 개방되면서 한국 여성 챔피언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고, 현재의 한국 권투계에선 권투위든 프로모터든 여자 권투계를 상당히 밀어 주고 있다. 하지만 선수가 여자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남자부 경기에 비해 재미와 스릴과 임팩트가 떨어져서 협회에서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 [[태국]]이나 [[미국]]에서 4~6라운드를 뛰던 모 [[듣보잡]] 선수를 데려와 세계 타이틀전에 세우거나, [[김주희(권투)|김주희]] 선수가 세계 5대 기구를 석권했다 하나,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하나같이 아무런 관심들이 없다.[* 한국 여자 권투의 실태를 [[http://blog.naver.com/townsley?Redirect=Log&logNo=110085355891&from=postView|알 수 있는 글]]. 읽어볼 만 하다.] 이런 문제들을 제외하고도 계속해서 비리 사건이나 편파 판정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는 한국권투위나 부패한 관계자들 역시 문제의 핵심이며, 올드 팬들의 불필요한 [[텃세]] 역시 팬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도 있다. 한 마디로 현재의 한국 권투는 '''[[좆망|망해도 완전 망했다]]'''. 한국에서 [[종합격투기]]가 권투의 인기를 추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권투 자체를 아무도 안 하고(특히 프로 선수로) 아무도 안 보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는 처참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허영만]]은 <[[식객(만화)|식객]]> 11권(도시의 수도승)에서 [[재래시장]] 같은 곳에서 권투를 해도 사람들이 안 볼 정도라고 안타까워 했을 정도다. 1970년대에 권투 만화 <무당거미>를 비롯한 작품들을 연재할 당시 권투선수들을 손수 찾아가 자문까지 얻던 추억을 경험한 그로선 더더욱 이런 점이 크게 다가왔을 듯. <식객>을 연재하면서 다시 찾아간 예전 그 선수들에게 '그 때와 너무나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한탄을 들었다고 한다. 정말로 어떻게든 제대로 된 프로 권투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지경이다. 심지어 [[http://www.paoin.com/paoweb_media/handler/linkarticle.aspx?CNo=145925412&SCT=AH107|이런]] [[http://www.ilyo.co.kr/detail.php?number=62078&thread=04r03|소식들]]도 있다. 요약하자면 일본 챔피언 가메다 고키에게 국내 복서인 손정오가 떡밥 격으로 던져졌는데, 시합 장소가 국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과 업무를 협력할 만한 파트너가 없어서 일본 측이 시합 개최의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는 이야기. 홈 어드밴티지조차 빼앗길 정도로 심각하게 몰락해버렸다는 말인데, [[야구]]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이 한일전으로 열리는데, [[한국야구위원회]] 같은 조직이 전혀 없거나 준비가 미비해서 대회 준비도 심판도 진행도 다들 일본에서 도맡아 경기하는 꼴이다.[* 위 경기에서 가메다 고키에게 떡밥 격으로 던져진 손정오 선수는 2013년 11월 19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열린 경기에서 챔피언에게 다운을 뽑아내는 등 선전 끝에 2:1 스플릿 디시전으로 아쉽게 판정패했다. 홈필드 어드밴티지가 있었다면 이변도 충분히 가능했던 경기였다.] 게다가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의 여파로 글로벌 권투 인기도 갈수록 식어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점차 침체되고 있는 한국의 권투는 더더욱 침체되고 있다. 또한 복싱의 고인물화로 지도자들의 편협된 지도 방식도 1류 복서들을 양성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스타일을 잡아주며 트레이닝 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선수마다 정말 천차만별의 개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허나 국내에선 트레이너 본인의 복싱철학을 강요해 트레이닝 시키는 경우가 상당해서 선수들의 기량 증진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이고 희망이 있는 면은 프로 권투는 이렇게 [[잡초]]까지 말라버릴 정도로 몰락했음에도 [[국가대표]], [[올림픽]], [[아시안 게임]], [[전국체전]] 같은 실업 권투 환경은 글로벌 기준에서 봐도 꽤 우수한 편이라는 것. 국내 실업 권투는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세계 대회에서 실적을 냈을 경우엔 억대 연봉까지 가능하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50825162408386|[취재파일] 복싱 신종훈 '태극마크 포기', 누구의 책임인가?]] 옆의 기사에 실린 신종훈의 경우, 인천시청 소속으로 받는 연봉이 8천만 원이고, 여기에 우수 선수 지원금과 각종 수당을 합치면 연수입 1억원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띄는 실적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권투 금메달 정도인데, 이 정도 실적으로 대전료 1억 원은 미국 프로 권투계에서도 절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도 1년에 몇 번 없을 슈퍼매치의 언더카드급(즉 방송 중계가 되는) 경기의 대전료가 5천 ~ 2억원 내외이다. [youtube(M0lmyVYsWiA)] 허나 그마저도 2019년 5월 3일, 체대 입시를 위한 [[승부조작]]이 만연하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며 그나마 옹호받던 비프로 권투 기반조차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한국 권투는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개망한 한국 권투의 중흥은 이번에도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걸 여과없이 한꺼번에 보여주고야 말았다. 비단 이런 소식 외에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2/0000507784?sid=102|고등학교 복싱부 선배의 후배 폭행 소식]],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68&aid=0000796338|한국 복싱의 레전드 장정구의 택시기사 폭행 소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9/0002698332?sid=102|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의 성추행 소식]][* 기사에는 이름 석자를 안 밝히고 문모씨라고만 했지만, 이 문제의 문모씨의 정체는 문성길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654194?sid=102|복싱선수의 씨름선수 폭행 소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317871?sid=102|前 복싱 챔피언 음주운전 소식]][* 링크의 기사에는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지만, 이 복싱 챔피언의 정체는 염동균이다. 여담으로, 이 염동균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前 축구인 [[염동균]]과는 [[동명이인]]이다.] 등 하루가 멀다하고 긍정적인 소식은 전혀 없고 부정적인 소식들만 자꾸자꾸 보도되고 있으며, 이런 소식이 들렸다 하면 네티즌들의 반응도 이제는 '이젠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 '솔직히 쟤들 저러는 게 어디 하루이틀이었냐', '이젠 놀랍지도 않다', '윗대가리들부터가 저 모양 저 꼴인데 아랫것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 '이러니 한국 복싱이 망했지', '이대로라면 한국 복싱은 영영 부활 못 한다' 등의 반응들을 내비치고 있을 정도로 마치 [[당연지사]]라거나 무관심스런 반응들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권투 입문 과정은 먼저 아마추어 권투에서부터 여러 커리어를 쌓고, 우승도 몇 번 해 가며 유망주로써 프로 권투에 진출해 업적을 쌓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외국은 대체적으로 이런 형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실업 권투의 보상이 후하다 보니 전업 프로 권투 선수가 되기 전 입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을 아예 이 쪽 전업 복서로 딱 붙잡아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에서 은퇴하고 [[코치(스포츠)|코치]]나 [[트레이너#s-1]]로 전향하거나 또는 아예 체육관을 차려 사범이나 관장이 되어 직접 지도해가는 케이스가 많다. 3라운드 짜리 아마추어 권투와 10/12라운드짜리 프로 권투는 다른 경기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선수들이 실업 무대에 남기를 더 선호하는 한 프로 권투계의 경쟁력 개선과 한국 권투의 부활은 요원하다. 시스템 측면에서도 이미 실패하거나 더는 통하지 않는 한물간 옛날식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것도 문제다. 권투 선수의 경우 한 명의 지도자에게 꾸준히 지도받아야 하는데[* 물론 ~~[[꼰대]] 관장과의 불화와 같은~~ 예외도 있겠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트레이너 밑에서 꾸준히 수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프로 레벨에서도 트레이너 잘 만나서 커리어가 확 핀 선수들도 수없이 많다. [[마이크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 [[매니 파퀴아오]]와 [[프레디 로치]]처럼 명선수 옆에 명트레이너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한국은 태릉에 입소하여 단체로 훈련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가르치는 국가대표 감독의 전문적인 선수 지도 역량이나 열의도 의심받고 있다. 한 번 금메달 따기도 힘들다는 [[전국체전]]을 9년 연속으로 우승한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1등을 차지하는데도 참관하지도 않고 나 몰라라 하는 등 말이다. 여담으로, 한반도 권투 선수 중 처음으로 링에서 사망한 선수는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김득구가 아니라 '''김정윤'''(金正允, 1910 ~ 1930)이다. 한반도 최초의 프로권투 선수이자 고바야시 노부오(小林信夫)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 [[일본어 위키백과]]의 小林信夫 항목에는 출신지가 [[함경남도]] 원산부(지금의 [[강원도(북한)]] [[원산시]])이며 일본통치시대의 조선의 스포츠 선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으나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1930년 9월 4일에 낸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30090400239207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0-09-04&officeId=00023&pageNo=7&printNo=3473&publishType=00020|사망 기사]]와 비교해보면 둘은 명백한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김정윤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51100329209012&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5-11&officeId=00032&pageNo=9&printNo=11265&publishType=00020|경향신문의 1982년 5월 11일 보도 내용]]에는 김정원(金正源)으로 기록되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0459|김정연(金正淵)으로 기록되는 등]] 오기되는 일이 많다. 여담이지만 일본어 위키페디아의 이러한 서술은 중국 국내에서 위구르와 티베트 출신 유명인 혹은 유명체육인(ex. [[최잉 끼]], 농구선수 아딜잔 등)을 중국인으로 애둘러 취급하는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김정윤은 1930년 9월 1일, 고시엔 테니스 코트의 특설 링에서 [[필리핀]]의 보비 윌스에게 9회 KO패를 당한 후 사망하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 [[일본]]에서는 (일제강점기니까) 자국 권투 최초의 사망사고 사례로 오히려 한국보다 더 크게 다루고 있으니 참 비운의 선수이다. 2021년에는 급기야 대한복싱협회가 대한체육회의 관리 단체가 되고 말았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2722140005671|#]] 단체의 회장 선출에 관한 내분이 정리될 기미도 없이 운영이 망가진 결과 지금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관리 단체로 지정된 후 2년 이내에 운영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대한체육회 지정 단체에서 제명이 심의된다. 결국, 이런 분위기에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달랑 동메달 1개(92 킬로그램, 정재민)만 받아서 아시안 게임 메달국가에서 최하 순위인 공동 12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