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복/일본군 (문단 편집) ==== 19식/26식 군복 ====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AccurateSoreMushySmash, 합의사항1=대한제국 군복과의 관계를 매우 비슷하다라고 표현하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Army1900.jpg]] [[파일:명치19년식.jpg|width=300]] || [[파일:340px-Onodera_Makoto_Uniform.jpg]] || || 당시 장교의 군복[[https://www.wikiwand.com/en/Uniforms_of_the_Imperial_Japanese_Army|출처]] || 1900년대의 일본군 육군 복장의 기본은 1886년(메이지 19년)에 제정된 메이지 19년식 군복이다.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프랑스가 아닌 독일의 군제를 참고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게 되었고 군복 또한 프랑스식에서 독일식으로 변경되었다. 노란색 테두리가 둘러진 검은색 군모[* 단, 장교와 근위사단 소속 병사는 빨간색 테두리의 군모를 썻다.]와 검은색 군복에 흰색 [[각반]]을 차는 것이 특징으로, 계급장은 견장이였으며[* 단, 장교는 견장이 아닌 [[수장(장식)|수장]]으로 계급을 나타내었다.] 소속 [[연대(군대)|연대]] 번호를 기입하였다. 칼라장과 바지 세로선의 바탕색은 각 병과 별로 색이 달라 병과를 나타내었다. 여름에 입는 면 재질의 하복 또한 재정되었다. 백색이였으며 단추로 잠그는 동복과는 다르게 호크(걸단추) 형태였다. 군모는 동복의 것을 그대로 쓰되 백색 포를 덧씌워서 검은색 부분을 가렸다. 견장은 없었으며 ㅅ자 모양의 수장으로 계급을 표시했다. 의회단의 난 당시 영국군을 본따 백색에서 카키색으로 염색하였는데 이게 러일전쟁 당시 굉장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38년식 군복이 채택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 미디어에 나오는 [[청일전쟁]], [[동학 농민 혁명]] 당시의 "구한말 일본군"의 일반적인 복장이 바로 이것이다. 그 후 메이지 33년식, 메이지 37년식([[러일전쟁]] 때의 전투복) 등 소소한 개정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한제국군]]의 군복과 매우 비슷한 옷이라 헷갈리는 한국인이 있는데 상하의 군복은 계급장, 옷 장식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일본에서 들여온 군복과는 다르게 군모는 독일 세창양행에서 수입해서 다른 요소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일본군과 대한제국군이 매우 비슷한 군복을 착용한 이유는, 1895년 ‘陸軍服裝規則’을 칙령으로 정한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 육군의 조장 이하 병졸이 사용하는 복장을 사실상 차용하였고,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동시에 군사제도를 정비하면서 육군의 복장 규칙 역시 개정하였으나 반일적인 기조와는 별개로 여전히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일본을 많이 참고하였기 때문에 군복 또한 일본군의 것을 계속 모방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