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벌 (문단 편집) === [[일본]] === 역사적으로 보면 [[헤이안 시대]]의 끝을 필두로 [[쇼군]]이 지배하는 색채가 강했기 때문에 군벌의 의미가 크다. 이 상황은 [[센고쿠 시대|전국시대]]에 발발한 사실상의 군벌들인 센고쿠 다이묘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정점을 찍는다. 예를 들어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타치바나 무네시게]], [[가토 기요마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고니시 유키나가]], [[구로다 나가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나가오카 다다오키]], [[시마즈 요시히로]] 등이 대표적인 센고쿠 [[다이묘]]들이다. 일본의 군벌들도 중국 군벌 역사와 매우 유사하다. 사실상 복사한 뒤 붙여놓고 규모를 축소시켰다고 보면 된다. 이쪽도 [[에도 막부]]와[* 멸망 과정에서 신 정부군 을 자칭한 군벌들의 반란으로 [[막부육군]]이 대패 하면서 멸망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자면, 모든 군대가 중앙 집권세력에 복종하는 일반적인 중앙집권 국가에서 일어난 단순 반란과는 조금 다르다. 사실상 [[연방제]]나 다름없는 국가에서 일부 연방들이 자신들의 지역군벌을 동원, 중앙정부를 타도하고 신정부를 내세운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즉 전자에 해당하는 ‘중앙집권 세력에 복종하는 군대’는 [[메이지 유신]]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국시대에도 [[천황]]은 있었고 명분상 이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 맞긴 했으나 모든 면에서 실질적인 중앙집권을 행하고 있던것은 막부였으나 그마저도 막부에 복종 하기를 거부하거나 쇼군의 자리와 [[패권]]을 노리고 싸움을 벌이기 일수였다.] [[일본 제국]]을 제외하면 군벌들의 내분으로 인해 통일국가를 유지한 적이 거의 없다. [[19세기]] 말 이후로는 들어서는 초기에 육군의 상층부를 독점했던 [[조슈 번]] 출신과 다른 지역 출신의 대립이 시초. 이후 크게는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육군과 해군 사이의 다툼]] 쪽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지만,[* 다만 이는 본 문서에 상기된 ‘개인의 군세가 닿는 한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한 사람이 통솔하는 무력집단’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당시 일본제국군은 천황이 통솔하는, 즉 중앙집권세력에 의해 통제받는 군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명목상 통수권자가 천황이었을 뿐 내각의 통제를 받았으나 이 또한 ‘실질적인 중앙집권 세력에 복종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그 ‘중앙집권 세력 내부’에서 두 분파로 나뉜다는 것이지 개인이 군벌을 누릴 능력이나 권한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워낙 일본이 그 정도가 도를 지나치고 병맛으로 유명해서 (...) 부각되는 것일뿐 이런 류의 대립은 타국 군대에서도 많아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일반적인 의미는 해당 문서에 잘 설명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1920년대]] 이후 생긴 육군 내의 파벌에 대해 다룬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이후 경제위기가 닥치자 [[일본군]] 내에서는 "[[천황]]의 눈과 귀를 가리는 썩어빠진 정계의 간신배들을 숙청하고 [[천황]] 중심으로 청렴한 군이 직접 정치에 나서자!"는 식의 주장을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황도파]](皇道派)라고 하며 이들과 대립하여 "군은 [[군인]]에게, [[정치]]는 [[정치인]]에게"를 주장하는 [[통제파]](統制派))가 생겨났다. 이렇게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황도파와 통제파는 이념보다는 육군의 [[헤게모니]]를 잡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황도파는 초조해서 [[2.26 사건|쿠데타]]를 일으키는 병크를 범했고, [[히로히토]]가 이를 반대하면서 무력하게 진압된 것을 기화로 통제파가 결국 승리하여 결국 군권을 장악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시즘]]과 침략전쟁으로 폭주했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는 둘 모두 차이가 없었다. 통제파가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유명한 전범인 [[도조 히데키]]도 통제파의 대표적 [[인물]]인 것을 보면 황도파-통제파 할것 없이 일본 군부는 모두 미쳐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애초에 통제파의 모토인 '군은 군인에게 정치는 정치인에게'도 딱 독일제국 시절 독일군의 모토와 비슷하며 독일제국의 최후를 감안하면 의미없다. 심지어 결국 통제파 출신의 도조 히데키가 총리까지 했으니 통제파는 모토조차도 버린 셈.] [[일본]] 현대사에서 군벌은 [[메이지]] 시대 이후 나온 군부의 [[장교]] 집단을 가리킨다. 건군 초기에는 [[메이지 유신]]의 주도 세력이었던 조슈 번(지금의 [[야마구치현]])과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현]]) 출신 장교들이 각각 육군과 해군의 군벌을 이루었고 이후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의 근원이기도 하다. 처음엔 출신에 따라 나눴다가 나중엔 육군은 [[전체주의]] 사상의 황도파와 그 반대 세력이 결집한 통제파, 해군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에 따라 조약파와 함대파로 갈렸다. 이 가운데 주로 정국을 주도한 세력은 육군의 통제파였다. 이러한 근현대 일본의 군벌은 특정 지역에서 통치력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군벌로 분류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군벌로 부른다. 근현대 일본의 군부 안에서의 군벌 간 대립의 역사가 초창기에는 일단 지역 간의 대립으로부터 시작해서일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