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벌 (문단 편집) === [[한국]] === [[한국]]의 군벌은 기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에 있었던 지방국가들을 군벌로 봐야하느냐, [[후삼국시대]]의 일부 왕조국가들 또한 마찬가지로 군벌로 봐야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후삼국시대는 대중들이 흔히들 알고있는 삼파전 양상과는 다르게 각 지방의 군벌들 또한 난립해 있었다. 이중에 천년에 가까운 [[정통성]]을 지닌 신라를 제외한 [[태봉]](후고구려), [[고려]], [[후백제]] 등의 신흥 대규모 군벌들은 중앙 왕조를 설립하여 집권하기 시작한 시점에서도 군벌로 봐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해서는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와 별개로 [[고려군]]은 [[중화민국]]의 [[국부군]]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왕건을 중심으로 한 호족군벌을 시작으로, 통일 이후에는 [[광종]]의 [[개혁]]으로 실질적인 수준의 중앙집권 국가로 변모해 고려의 중앙 [[정규군]]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려군은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의 [[쿠데타]]가 성공 한 뒤 [[조선군]]으로 흡수되었고, 국부군은 [[국공내전]] 말기에 대륙에서 항전 끝에 해체 되거나 [[타이완]]으로 이주하여 대만의 [[중화민국군]]이 되었다는 점이다.] 기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군벌은 [[삼국시대]] ~ [[고려시대]], 조선초까지 존재했던 지방 귀족과 호족들의 [[사병]], [[대몽항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시기에 발생했던 [[의병]], [[일제강점기]] 당시 활동했던 [[독립군(한국)|독립군]]들이 대표적이다. [[한국사]]에서 군벌 세력이 대두한 시기는 [[삼국시대]] 초기나 [[남북국시대]] 말기([[후삼국 시대]]), 그리고 고려 말 조선 초, 즉 국가 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기이다. 특히 통일신라 말기(후삼국 시대)는 각지의 군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크게 가진 군벌의 전성기(?)였으며, 이들 중 가장 강력한 군벌이었던 [[견훤]], [[궁예]]→[[왕건]]은 각각 [[후백제]], [[태봉|후고구려]]→[[고려]]라는 새 국가를 세우면서 기존의 [[신라]]와 함께 후삼국 시대를 열었다. 이후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군벌 세력은 중앙 [[문벌귀족]]이나 지방 토호로 바뀌면서 소멸한다.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 상으로는 북한도 일종의 군벌인 셈이다. [[무신정권]]이나 [[이괄의 난]]을 포함한 [[쿠데타]]들은 개인 소유의 사병(군벌)을 가지고 일으킨 것이 아닌 한때 실질적으로 혹은 명목상 중앙왕조의 통제를 받던 병력들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군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60~80년대에 큰 정치 권력을 가졌던 군부 인사들(예를 들어 [[5.16 군사정변]] 및 [[12.12 군사반란]]의 주역들)을 군벌로 지칭하기도 하나 성격이 다소 다르다. 무엇보다 특정 지역을 근간으로 한 사병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영남|특정 지역]] 위주로 편중되긴 했다.[* 물론 호서, 호남 지방 등 극소수로 있긴 했지만 정치적 성향이 묻어버렸다.] 이렇듯 [[하나회]] 같은 군부 내 파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군벌로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군벌이라고 불렸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군벌이든 파벌이든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을 가진 집단이 권력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가져 남용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