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조오례의 (문단 편집) == 의의 == 첫째로 고조선·삼국·고려 시대까지는 의식에 일정한 준칙이 없었고 의식의 내용을 통일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또한 이전까진 중국의 의례서에만 기대었으나 국조오례의 이후부터 한반도의 국가 의식들은 국가 규정에 따라 정례화되고 체계적으로 변하게 된다. 둘째로 이전에 그나마 구전되어 전해지던 우리 고유의 왕실의례들은 불교, 유교, 민속적인 것이 혼합된 잡통 의식이었으나 조선조에 와서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의식, 즉 예교질서(禮敎秩序)가 정립되었다. 셋째로 단순 왕실의 의식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산천, 기우 등 제의식(祭儀式)과 특정일에 치러지는 명절의식, 각 달마다 치러지는 시향행사 등 민간의식에 대한 내용도 상세히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고대 민간인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의식 절차뿐만 아니라 의식에 사용된 의복, 재물, 물건, 사용한 제기 등에 대한 모든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경번갑]]의 경우 국조오례의에 그려진 삽화들을 통해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경번갑 유형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http://egloos.zum.com/kyb0417/v/4663423|#]] 기타 [[두두미갑]], [[두정갑]] 등 수많은 갑옷과 무기에 대한 삽화들도 모두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