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제연맹 (문단 편집) === 짧은 평화 시기 === [[미국]]이 LN에 가입하지는 못했지만, LN에 친화적인 정책은 지속하여 LN 이사국들과 함께 1921년 [[워싱턴 회의]]를 개최하는데는 성공하였고, 강대국들의 군비축소라는 수확을 거두기는 했었다. [[코스타리카]]가 가입한 지 5년만인 [[1925년]] 탈퇴하고, 다음 해인 [[1926년]] 6월에는 [[브라질]]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실패하고 분노하여 탈퇴해버리면서 국제연맹의 탈퇴행렬은 시작되었다. 그래도 당장은 모든 것이 무너진 게 아니었고, 오헝제국 해체와 러시아의 공산화 등으로 들끊었던 유럽 내부의 여러 위기들을 국제연맹이 조정에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무엇보다 같은 해 9월 [[바이마르 공화국]]이 가입해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또한 군비축소위원회도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고, 조금 이르게는 [[워런 G. 하딩]]이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영일동맹]]을 끊고 군비경쟁을 완화시켰다. 이런 상황이 되자, 국제연맹체제를 진두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제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완벽하게 돌아왔다고 안도하게 되었다. 사실 [[대공황]]이 망쳐놓기 전에는 여러가지 공과 과가 모두 존재했다. 1921년엔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의 [[올란드 제도]] 분쟁을 정리했고, [[바이마르 공화국]]과 [[폴란드]]사이의 북[[실레시아]] 영토분쟁을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제 연맹의 커다란 공헌으로 1921년에 알바니아 제1공화국과 [[유고슬라비아 왕국]] 사이의 전쟁 위기와 1925년에 [[그리스 제2공화국]]과 [[불가리아 왕국]]간 [[페트리치 사건]]으로 인한 전쟁 위기를 중재하는 등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기구로서의 제 역할을 하였다. 허나 동시에 [[1920년]] [[빌뉴스 위기]]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이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을 침공, 영토를 강탈해감에도 제제수단의 미비함과 프랑스의 폴란드 지지로 폴란드의 침공 행위는 아무런 제재 없이 용인되었으며 [[1923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그리스-알바니아 국경에서의 이탈리아 장군 객사를 명분으로 그리스의 [[코르푸 섬]]을 포격, 점령함에도 침략국 이탈리아를 벌하기는 커녕 쩔쩔매며 '''그리스에 배상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국제연맹의 각종 분쟁 중재들은 1925년의 로카르노 협정과 함께 사람들에게 대화와 존중을 통한 전쟁없는 세계로의 도약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과 이로 비롯된 극단주의의 득세로 국제연맹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