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악 (문단 편집) ==== 아악 ==== 雅樂. 원칙적으로는 [[북송|송나라]]에서 들어온 음악을 뜻한다. 원래 '아악'은 '아정(雅正)한 음악'이란 뜻으로, 중국 [[주나라]] 때부터 궁중의 제사음악으로 시작하여 [[북송|송]]때에 '대성아악'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된 것을 뜻한다. 한국에는 [[고려]] [[예종(고려)|예종]]대에 [[북송|송나라]] [[휘종(송)|휘종]]이 대성아악과 이에 쓰이는 각종 [[악기]][* 즉 이때 들어온 악기가 [[국악기#s-1.2|아악기]]이다.]와 무구, 일무(무용)등을 전해준 것이 그 시초이다.[* 참고로 이 때 [[북송|송나라]]에서 대성아악을 들여온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왕자지]](...).] 이 때부터 아악은 선농제, 선잠제, 원구제, 사직제 등 각종 국가적 [[제사]]와 궁중 연향악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대왕|세종]]대에 가장 활발하게 복원과 정리가 진행되었다. 특히 아악의 정리와 복원에 가장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은 [[박연]]으로, 음률의 기준이 되는 황종관의 확립, [[편경]]의 음률 교정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박연은 중국에서도 이미 많이 변해버린 [[문묘제례악]]의 구조를 각종 고증을 통해 고대 [[주나라]]의 예법에 맞춰 복원하였다. 하지만 아악은 [[연산군]]대에 각종 향악이 궁중 연향에 사용되면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등 각종 전란을 겪으면서 쇠퇴하였다. 겨우 [[선조(조선)|선조]] 25년에 이르러서야 [[문묘제례악]] 등의 제향악에 아악이 사용되게 되었다. 그나마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환구단]]과 [[사직]]에서 지내는 제사가 폐지되어 사직제례악 등은 소실되어 버려서[* 그래서 [[사직]]제를 복원할 때 사직제례악을 복원하지 못해 오랫동안 [[문묘제례악]]을 사용했다고 한다. 2014년에야 비로소 복원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엄밀한 의미의 '아악'은 '''[[문묘제례악]] 1곡 뿐이다'''. '아악'의 '雅'자가 '아정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정악'을 '아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경우(특히 옛 문헌에서 자주 그런다)가 많기 때문에 주의.[* 대표적인 예가 [[일제강점기]] 때의 '''이왕직 아악부'''.] 여담으로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의 첫 항목이 아악(a-ak)이다. 이는 하이픈이 a보다도 더 앞에 정렬되기 때문. 정작 내용은 짧은데, 일본식 독음인 '가가쿠'를 보라고만 되어 있다. '가가쿠'에는 한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내용이 있긴 하다. [[https://postechlibrary.tistory.com/505|#]] >'''a-ak''' (ancient East Asian music): ''see'' '''gagaku'''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